[가리사니] “고3 힘내세요” 영혼 없는 위로보다는

입력 2020-08-24 04:05

교실 벽 급훈의 우측 아래에 붙어 있던 ‘수능 D-101’에서 뒷자리 1일 떨어지던 날, 담임선생님은 조촐한 과자 파티를 열어줬다. 당구 채를 둘로 잘라 앞부분을 끈으로 엮어 손목에 걸고는 ‘휘휘’ 돌리고 다니던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과자 주변에 둘러앉은 제자 한 명씩 등을 토닥여주던 그의 따뜻한 손길에서 “진짜 얼마 남지 않았구나”란 서늘함이 느껴졌다. 스트레스성 여드름 때문에 얼굴이 멍게처럼 변한 녀석, 고개 푹 숙이고 책을 보다 축농증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를 내던 녀석과 과자를 입에 넣다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공유했었다. 20여년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못된 생각이지만 그때 그 과자 파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위로하려는 이의 마음을 알고 고마워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D-99’가 붙어 숙연해진 교실에서는 전날 파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고3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돌아서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만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올해 고3이 가장 불쌍하다”라는 얘기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고3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는 뭘까. 일단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00일쯤 남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또다시 전국을 휩쓸 기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고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으로 온통 도배되고 있다. 어제는 300명 오늘은 400명…, 이제 정부가 3단계 얘기를 꺼내는 상황이다.

수능은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까. 출제가 이뤄질지조차 의문이다. 조만간 출제위원과 검토위원, 관리인원까지 전국에서 수백명이 모여 합숙 출제를 해야 한다. 그래도 수험생 50만명이 움직이는 수능 당일에 비하면 작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를 위한 별도 격리 시험장을 마련하고, 일반 시험장에서도 발열 등 의심 증상이 나타나는 인원을 분리하는 방안을 발표했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기 전인 이달 초 내놓은 모래성 같은 대책이다. 얼마나 많은 격리 공간을 마련해야 할지, 격리 시험장을 감독할 인력은 누구이고 몇 명이나 대기시켜야 할지, 시험장에 즉석에서 유증상자를 수용할 공간은 얼마나 준비할지 교육부도 방역 당국도 수능에 임박해서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능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대입은 이미 진행 중이다. 다음 달 3일 수능 원서접수를 하고 나면 16일에 수능 최종 리허설인 9월 모의평가가 기다린다. 일주일 뒤 수시모집 원서접수, 이달 말 수시전형이 진행되는 일정이다. 수시 7, 정시 3의 비율이므로 다수의 학생이 이 과정에서 대학이 결정된다.

수시 원서접수가 끝나면 얼마 뒤 대학별고사가 진행된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것이 유동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개별 대학에 맡겨 놓고 한발 빠져 있다. 대학별로 시험 방식이 다양해 가이드라인을 주기 어렵고, 학생 선발은 대학 권한이란 이유를 든다. 현행 대입은 수시 6회, 정시 3회 지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대학 하나가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 불확실성이 커지면 어디서 어떤 피해자가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피해는 연쇄적이고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플랜B’를 준비해놨다고 들었다. 그러나 공개를 꺼리는 눈치다. 혼란을 염려해서라면 공개를 주저할 경우 더 혼란스러워지는 시점이란 말을 해주고 싶다. “걱정은 정부가 하니 고3은 공부나 해라”는 생각이라면 ‘꼰대적 발상’이다. 설익어서 비판이 걱정된다면 보완하면 된다. 지금은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비상상황이다. ‘교복 입은 시민들’과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고3 여러분 힘내세요” 같은 영혼 없는 위로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