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 ‘누수 계측기’ 달아 붕괴 막는다

입력 2020-08-21 04:06

충북 제천시 산곡동 주민들에게 지난 2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불과 이틀 사이 276.7㎜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갑작스러운 피난길에 올랐다. 인근에 위치한 용하 저수지가 감당 못할 정도로 물이 차올라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저수지가 붕괴되면 한계수위까지 차오른 19만5000t의 물이 한꺼번에 마을로 쏟아질 터였다. 재산 피해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던 순간이다.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농정 당국은 붕괴를 막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저수지 시설 중 일부를 깨부수기로 했다. 물이 과도하게 차오를 경우 조금씩 흘러나가도록 만들어놓은 ‘물넘이 시설’ 한 축을 무너뜨려 수량을 대폭 줄여나갔다. 국가자산을 파괴한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효과는 컸다. 해당 조치에 양수기 배수를 병행한 결과 저수율은 64%까지 낮아졌다. 산곡동 주민들은 지난 11일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사상 최장 기간 장마가 저수지 관리에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홍수가 났을 경우 저수지 붕괴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하 저수지처럼 농정 당국의 적절한 임기응변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알 수 없다. 변화무쌍해진 기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수지의 홍수 대비 능력은 이 지적에 힘을 싣는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저수지는 3411곳에 달한다. 이 중 댐처럼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수문이 있는 곳은 361곳(10.6%)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설은 대부분 물넘이 시설로 저수량 상승에 대응하고 있다. 물넘이 시설이란 저수량이 포화할 경우 물이 흘러나가도록 제방에 설치하는 시설을 말한다.

농식품부는 저수지 시설의 항구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일정 규모 이상 저수지에 ‘누수 계측기’를 일괄 설치해 이상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감시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비상 수문 설치 등의 시설 보완도 병행키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설 보완과 함께 비상대피계획 대상 저수지를 확대해 안전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