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편도 들지 않고 중도 입장 대변… ‘도 넘은 독설’ 비판도

입력 2020-08-21 04:02

유명 정치인이 아닌데도 하루 평균 58건(네이버 기준)의 기사에 인용되는 인물. ‘조국 사태’ 이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당사자 못지않게 주목받았던 인물. “좀비” “똥개” “뇌가 없다” 등 거친 언사에 환호와 비판이 잇따르는 인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어느새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 신랄한 독설로 논란의 중심에 선 그가 이런 영향력을 갖게 된 데는 하루 10건 안팎의 글을 쏟아내는 다작에만 있지는 않다. 어느 한쪽 진영에 들지 않으면서, 진보의 대표 논객으로서 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점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그의 페이스북 글에는 1000건 안팎의 ‘좋아요’ ‘최고예요’ 등 반응이 달린다.

국민일보가 20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진 전 교수의 언론 노출도를 검색한 결과, 조국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진 전 교수를 언급한 기사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9월~2019년 8월 1년간 그가 언급된 기사는 54개 언론사 기준 187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조 전 장관을 비판하고 정의당에 탈당계를 낸 2019년 9월부터 2020년 8월 19일 현재까지 그가 언급된 기사는 6752건으로 껑충 뛰었다. 네이버뉴스에서 올해 1월부터 8월 19일까지 ‘진중권’을 검색하면 1만3587건이 나온다. 하루 평균 58건의 기사에 이름이 나오는 셈이다.


“누구의 편도 아니다”

진 전 교수가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배경으로는 진영 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 현안에 대해 간명하고 강한 어조로 비평한다는 점이 꼽힌다. 이른바 ‘모두까기’다. 그는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를 향해 “좀비들” “유사 종교집단”이라고 하고 통합당을 향해서는 “뇌가 없다” “똥볼이나 차고앉았다” 등 거침없이 저격한다. 진 전 교수 본인이 당적을 가졌던 정의당이나 친문 인사들이 입을 닫았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논란에도 성역 없이 비판 목소리를 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 전 교수에 대해 “전반적으로 누구 편도 들고 있지 않다. 중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상식 코드를 잘 녹여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진보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이해 관계자로서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에 가감 없는 평가를 하는 면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중립적으로 중도층의 입장을 대변하니 전폭적인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정부를 비판하던 진보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크게 줄면서 진 전 교수에게 이목이 쏠린다는 시각도 있다. 진 전 교수와 함께 진보 성향의 논객으로 분류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교수 시절 조국 전 장관 등은 문재인정부의 ‘홍보 창구’로 평가되며 대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 강준만 전북대 교수, 진보신당 대표를 지낸 홍세화씨 등도 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진 전 교수만큼 공개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논객은 드물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박근혜정부 때는 진보적 지식인들,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박근혜정부를 조롱하고 욕했다.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지금은 그런 대부분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지식인으로서 발언할 분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위 ‘문빠’(문 대통령 극성 지지세력)의 화력 때문에 요즘은 기사 한 줄 쓰기도 어려워 보인다. 언론이 진 전 교수 말을 인용해 기사를 쓰는 방식으로 화를 피해가자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며 “문제의 핵심을 짚는 동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점이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지점”이라고 했다.

언론 불신 팽배…진중권이 ‘독립언론’

기성 언론이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있다는 대중적 인식이 진 전 교수를 하나의 ‘독립언론’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보수 언론은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만, 진보 언론은 친정부 기사만 양산한다는 인식이 퍼진 상황에서 진 전 교수가 기성 언론의 대체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진 전 교수는 색깔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에 대해 “내 색깔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이라며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언론학자는 “기성 언론이 진영에 치우친 기사를 양산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데, 언론이 객관적으로 비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 전 교수 말에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라며 “진 전 교수 자체가 하나의 언론이 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언론학자도 “진 전 교수가 정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나 예상이 어느 정도 퍼져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은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정치사회 이슈에서 객관적인 평론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진 전 교수의 도 넘은 독설이나 지나치게 단정적인 어조, ‘아니면 말고 식’ 의혹 제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진 전 교수는 ‘꾸기’(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적개심이라는, 표면이 울퉁불퉁한 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현진 통합당 의원은 “‘내 친구 조국’ 이후 분열적인 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움 겪고 계신 진 교수께 깊은 안타까움을 전한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인터뷰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반조국백서’(가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책을 쓰고 있는데, 출간 즈음에 기자간담회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이상헌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