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선수 고(故) 고유민의 유가족이 고유민이 극단적 선택을 한 주요 원인이 프로배구 현대건설의 ‘사기 갑질’ 탓이라고 주장했다. ‘트레이드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은 고유민이 현대건설 측의 부당한 임의탈퇴 공시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이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고유민 유족과 소송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건설은 고유민을 트레이드 시켜주겠다며 계약해지 합의서를 쓰게 하고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은 뒤 선수에게 말도 없이 임의탈퇴 선수로 묶어 어느 팀에서도 뛸 수 없게 했다”며 “고유민은 임의탈퇴 소식을 접한 뒤 구단에 속았다며 가족, 지인들에게 절망감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고유민과 현대건설 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고유민은 2월 28일 팀을 무단이탈했다. 이후 고유민이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구단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체결한 계약서의 불이행 사항이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3월 30일 고유민과 ‘선수 계약해지 합의서’를 작성했다. 구단은 이와는 별개로 무단이탈 행위에 대한 징계 차원에서 4월 6일 한국배구연맹(KOVO)에 계약을 해지한 고유민의 임의탈퇴 공시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자유계약선수(FA) 보상 기간이 끝나야 가능하다는 KOVO 답변에 따라 5월 1일 고유민을 임의탈퇴 시켰다. 임의탈퇴된 선수는 원 소속구단의 허락이 없으면 V-리그에서 뛸 수 없다.
쟁점은 계약을 해지한 선수를 임의탈퇴 시킬 수 있느냐다. 박 변호사는 “계약을 해지하면 고유민은 FA 선수고, 임의탈퇴 처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날 공개된 카카오톡 내용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전임 사무국장 A씨는 4월 20일 고유민에 트레이드 가능성을 알아보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유민도 지인에 “계약해지할 때 (구단이) 좋은 방향으로 (트레이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고 말하는 등 계약 해지가 트레이드를 위한 절차라고 인식한 정황이 발견된다. 현대건설이 임의탈퇴 처리한 뒤 고유민이 동료에게 “좋게 말해줘놓고 뒤통수 치나. 트레이드 해준다더니 임의탈퇴 공시했다”고 말하는 등 비관한 정황도 있다.
반면 현대건설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계약 해지) 합의서는 지난해 체결한 계약의 불이행 사항이 발행해 월급을 줄 수 없어 작성한 것이라, 계약서와는 별개의 것”이라며 “임의탈퇴는 무단이탈의 징계 차원이었고, KOVO에서도 가능하다고 해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트레이드도 진행했지만 무단이탈한 선수를 원하는 구단이 없었고, 원하는 구단이 나올 경우 임의탈퇴를 풀어주려 했다”고도 덧붙였다.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스포츠계 사정에 정통한 오승준 인스포코리아 변호사는 “계약을 해지한 뒤 임의탈퇴 시키는 건 굉장히 비도덕적인 행위고 국제적인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며 “프로배구는 규정보다 이사회 권한이 막강한 후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라 지적했다. 구단이 계약을 해지해 임금을 아끼면서 선수에 대한 소유권도 유지하려 했단 뜻이다.
결국 현대건설과 KOVO는 계약 해지에서 임의탈퇴에 이르기까지의 절차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면 저희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KOVO 관계자도 “저희와 구단 사이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미스가 있었던 것 같다”며 “계약을 해지한 뒤 임의탈퇴 공시를 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고 말했다.
고유민의 어머니 권모씨는 이날 “제 딸은 강한 아이라 악성댓글만으로 비관자살할 정도가 아니다”며 “제 딸이 얼마나 한이 깊었으면 눈을 못 감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