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내 집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입력 2020-08-21 04:03

예능 프로그램만큼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건 없다. 소위 뜨는 예능일수록 요즘 사람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투영한다. 먹방에 이어 쿡방이 뜨더니 요샌 주거 예능이 확 늘었다.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연예인이 발품을 팔아 집을 찾는 ‘구해줘 홈즈’는 어느새 주말 예능 강자로 자리 잡았다. 노후 주택이나 카페를 고쳐 가치 상승을 평가해보는 리모델링쇼 ‘홈데렐라’도 있다. ‘나의 판타집’은 출연자가 꿈에 그리던 집을 찾아낸 뒤 살아보게 하는, 주거 로망을 실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갈수록 사람들은 사는 공간에 주목하고, 그 공간에 정성을 쏟는다. 주5일 근무를 넘어 주4일 근무 시대가 머잖았다. 일주일 168시간 중 일터에서 보내는 52시간보다 퇴근 후 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시대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고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주거 공간 문제는 더 중요해졌다. 더구나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평생 일해도 벌지 못할 돈을 집으로 앉아서 버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삶의 만족을 위해서나 투자 가치를 생각할 때 ‘똘똘한 집 한 채’를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2020년 대한민국 20, 30대에겐 월급 모아 집 사는 게 가능했던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현실이 놓여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근로소득만으로 마음에 드는 집을 살 길이 없다. 청약 시장에서도 가점제에 밀리며 ‘서울 아파트 소유’라는 꿈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 사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근 1~2년 새 집값이 폭등하면서 20, 30대가 수도권에 집을 사려면 부모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부동산 시장은 그런 점에서 세대와 계층 간에 포기할 수 없는 욕망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전쟁터나 다를 바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투기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책을 쏟아내면서 갑자기 나라 전체를 부동산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그들 주장처럼 투기꾼만 잡으면 이 전쟁이 끝날지, 대체 누가 투기꾼이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집에서 살겠다는 욕망을 과욕으로 치부하고, “공급은 충분하다”며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새 아파트 공급을 안 하고, 저금리로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상황을 내버려 두면서 과연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전략전술도 의심스러운데 진두지휘하는 장수들 모습은 더 답답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들 생각은 틀려먹었으니 정부를 따르라’며 오기를 부리는 듯하다. 왜 시장이 이렇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이 뭘 바라는지 헤아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1%도 하지 않으면서. 이런 꼰대 같은 태도로 가뜩이나 신뢰를 잃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8·4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던 날 지역구 주민이 ‘홍 부총리가 발표하는 모습을 한번 보라’며 화를 내더라. 국민한테 협조를 요청해도 모자랄 판에 무조건 정부 말 들으라고 윽박질러서 되겠냐는 거다. 내가 봐도 태도가 좀 그렇더라.”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재선 의원이 사석에서 들려준 얘기다.

정부가 할 일은 사람들에게 어떤 집에서 살라고 훈계하거나 투기꾼으로 모는 일이 아니다. ‘강남이 좋습니까’나 ‘월세가 나쁘냐’는 말로 국민을 가르치려들수록 듣는 사람은 속에서 열불만 난다. 신혼부부든, 1인 청년 가구든, 무주택자든, 살고 싶은 집과 살 수 있는 집의 선택지를 넓혀주면 된다. 살아보고 좋으면 등 떠밀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가는 게 시장의 논리다. “월세도 괜찮네”, “강남에 안 살아도 좋아요” 이런 목소리는 그럴 때 시장에서 나오면 모를까, 정부·여당에서 먼저 할 소리가 아니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