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팬데믹의 시대… 新국가주의가 온다

입력 2020-08-20 18:21 수정 2021-11-04 16:5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인류에 만만치 않은 과제를 던졌다. 평등한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은 각자의 재산과 사회적 처지에 따라 제각각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전 지구적 위기인 팬데믹 상황에서 “조건 없는 전면적 연대와 전 지구적으로 조율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

‘읽는 사이’ 코너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도 조금 느릿하게 앞서 소개된 책을 읽었다. 20대 홈리스 여성의 삶을 보여 주는 소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묘사 때문인지 한층 더 잔혹하고 가혹하게 다가왔다.

일시적 노숙 상태라 여겼던 것이 불변하는 삶의 조건으로 고착되면서 삶을 둘러싼 구조가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 요컨대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극단의 고통이 여기 다 있다. 그들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남성들을 ‘신’이라 부르는 세계보다 더한 비극이 있다면 그 세계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홈리스가 된 여성이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어둠의 이야기가 서사의 세계에서 그리 ‘새로운 절망’일 리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익숙한 절망이라 단언할 수도 없는데, 익숙한 절망이라기보다는 외면해 온 절망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으면서 그의 고통에 동참하게 만드는 난제를 피해 가기란 쉽지 않다. 소설은 개인을 발명하고 발견하는 장르이지만 어째서인지 이 문제만큼은 개인으로 집중될수록 문제의 실체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소설적 모순에 봉착하는 것이다.

김주희가 쓴 ‘레이디 크레딧-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가 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 되어 준다. 오랜 시간 동안 성매매 업소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성들을 둘러싼 문제를 사악한 포주와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비도적적 성구매자, 즉 일탈한 개인에서 찾는 미시적 프레임의 한계를 느낀 저자는 성매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성매매 산업을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기업형 성매매’가 번성하게 된 20여 년 동안의 역사와 구조를 거시적으로, 요컨대 구조적으로 검토한다. ‘신’과 ‘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로 바라봐야 한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읽는 동안 슬라보예 지젝의 신간이 떠오른 건 나를 포함한 현실의 우리 역시 구조에 대한 진단이 긴급하게 요청되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상황 말이다. 지젝에게 바이러스는 의료 참사가 아니다. 그는 이 거대한 감염병을 인류가 생산하고 영위해 온 시스템이 한계를 드러낸 정치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는 최신의 저서 ‘팬데믹 패닉’에서 우리가 착취해 온 것들을 향해 있는 모든 구조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 새로운 일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이념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팬데믹 패닉’을 번역하면 전 지구적 감염병으로 인한 공황 상태쯤 될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공황은 현실의 위협을 받아들이는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삶의 조건이 아니라 일시적 공포로 인식한다는 것은 구조의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태세이기 때문이다. 공황 이면에는 언제나 구조가 있다. 공황 상태를 초래하는 것은 구조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기 때문이다. 최근 30대들의 아파트 매입과 관련한 기사에서 ‘패닉 바잉’이란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패닉 바잉은 가격 상승이나 물량 부족에 대한 불안 심리로 인해 자신의 소비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생필품이나 주식, 혹은 부동산을 구매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공포에 빠지면 사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팬데믹 패닉’에서 지젝은 데이터가 끝나고 이데올로기가 시작되는 곳에 주목하며 “조건 없는 전면적 연대와 전 지구적으로 조율된 대응”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 대응에는 “한때 공산주의라 불렸던 것의 새로운 형태가 요구된다”는 것이 포함된다.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전 지구적 연대의 방식이 모색되어 새로운 공산주의가 등장할 것이라는 지젝의 전망을 받아들이는 우리 태도는 그야말로 제각각일 것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가진 재산에 따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그러할 것이다.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고통에 더 취약하고 누군가는 그 위협에 덜 고통받는다.

고통의 불평등 앞에서 우리의 시간은 종식의 날을 기다리기보다 새로운 이념을 정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 감염병의 문제는 우리가 완벽하게 고립될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침착하게 당황하라”는 그의 전언을 삶의 기본값으로 설정해야 할 때가 왔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던 태세가 급격한 전환 국면으로 들어서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시간은 바이러스가 정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패닉의 일상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이념’의 출현일 것이다.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