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합니다. 양이란 동물의 특성은 시력이 약합니다. 방향 감각이 없어서 앞에 있는 양만 보고 따라갑니다. 비탈길 늪 개울에 빠지기도 합니다. 몸보다 다리가 짧아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 주인이 일으켜 줘야 합니다. 고집도 매우 세서 주인이 지팡이로 다뤄야 합니다.
이처럼 양은 혼자서는 살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군집 생활을 해야 하고 목자의 보살핌이 필요한 동물입니다. 그들을 지키는 목자가 없다면 양의 처지는 비참할 것입니다. 양은 4가지의 조건이 충족돼야 편안한 쉼을 얻습니다. 첫째, 겁이 많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쉼을 얻지 못합니다. 둘째, 집단적 동물로 서로 간에 불화가 있으면 쉬지 못합니다. 셋째, 기생충과 해충이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배부르지 않으면 잠을 못 잡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양들을 바라보는 주인 되신 목자의 심정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연민과 동정으로 가득합니다. 다른 번역본에는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질병과 가난, 영적인 무지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양 떼 같은 그들의 처지를 바라보셨습니다.
성경은 그때 예수님의 마음을 “민망히 여기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에스플랑크니쉬데’라는 단어입니다. 직역하자면 ‘창자에 이르기까지 감동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진(晉:東晉, 317∼420) 나라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눠 싣고 양쯔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환온의 부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 배에 실었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지만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해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습니다.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습니다.
배는 100여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배에 뛰어올랐으나 죽고 말았습니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양 떼의 처지를 바라보는 예수의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의 특징은 어리석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리석었습니다. 그들은 양과 같았습니다. 피리를 불면서 지팡이로 자신들의 길을 인도해 주며 막대기로 원수들을 무찔러주는 선한 목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목자 없는 저들에게는 언제나 고통만이 함께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거늘”(사 53:6)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소견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목자의 품을 떠난 양은 결국 사나운 맹수의 밥이 되거나 험준한 낭떠러지에서 방황하는 신세가 될 뿐입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경제적인 고통,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일상생활이 깨어짐에서 오는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더 마지막 희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김진주 구세군 음성 영문 사관
◇구세군 음성 영문은 2006년도에 개영 된 교회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구세군 정신에 맞게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