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주요 기업 상반기 실적 중 진짜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820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한국전력공사가 그 주인공이다. 경기 침체로 전력사용량이 줄어 당연히 장사를 망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매달 평균 1000억원 이상을 남긴 것이다. 저유가 영향이라지만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무튼 실적 발표로 분명해진 게 있다. 우선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매년 수조원의 수익을 내던 기업이 적자로 돌아섰다”는 주장이 견강부회(牽强附會)였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원전이용률이 지난해보다 더 떨어졌지만 한전 실적은 오히려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장 원리와 동떨어진 우리나라 전기요금체계가 소비자에게 항상 득이 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통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원가에 이윤을 더해 결정된다. 시장원리대로라면 경기 침체로 유가가 급락한 상반기엔 원가 하락분만큼 전기요금도 내려갔어야 한다. 그런데 전기는 원가가 변해도 가격 조정이 없다.
구체적으로 전기요금 원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구매비는 대부분 LNG 발전기 연료비다. 연료비 단가는 한전 비용평가 운영규정에 따라 5개월 전 두바이유 가격에 연동돼 결정된다. 지난해 배럴당 60달러를 넘겼던 두바이유는 올해 들어 급락, 지난 4월엔 24달러를 찍기도 했다. 국제유가가 3~5월 바닥이었다는 점에서 5개월의 시차를 감안하면 한전은 3분기엔 2분기보다 훨씬 더 많은 영업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결과론적이지만 재난지원금에 전기요금 인하까지 맞물렸다면 소비가 좀 더 살아날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대규모 이익을 낸 한전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다. 요금이 사실상 고정된 상황에서 유가에 따라 실적이 들쭉날쭉하고 있어서다. 한전은 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이던 2015~2016년에 연간 10조원 이상 흑자를 냈다가 유가가 60~70달러대이던 2018∼2019년엔 2000억∼1조3000억원의 적자를 봤다. 호경기엔 유가가 올라 눈물짓고, 유가가 떨어져 흑자가 나도 경기 침체 상황에서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아주 고약한 처지인 셈이다.
이번 실적 발표를 계기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도입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연동제는 유가 등 연료 가격 변동을 요금에 반영하는 체계로 실제 가스나 난방·항공요금은 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외국만 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한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연동제 도입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유가가 내려가면 전기료를 덜 내고, 올라가면 많이 내기 때문에 기업과 일반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도 전력 부문에서 발생하는 비용요소를 적기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전력구매비 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미온적이다. 2011년 필요성을 인식하고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시행을 앞두고 고물가 대책회의 끝에 적용을 유보했고, 결국 고유가 시기인 2014년에 연동제 도입을 폐기한 바도 있다. 정부가 아직도 연동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지금이 요금체계 개편 논의를 시작할 적기임은 분명하다. 당장 개편으로 인한 물가 상승보다 요금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상황이어서 반발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급등락하는 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 등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 최대 인상 폭을 제한하거나 가스요금처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상황에 연동제를 일시 유보하는 등 탄력 적용 방안이 좋은 사례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