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열세 살 차이가 난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다는 부모님의 강력한 결혼 반대도 우리의 뜨거운 사랑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남편은 생활력과 책임감이 강하고 섬세하며 정도 많았다. 더러운 것이 손에 묻는다고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못하게 했고, 하잘 것 없는 일까지 모두 대신하며 보호해 주는 사이에 나는 공주가 돼 갔다. 집도 공주가 사는 성 모양으로 빨간 벽돌로 5층을 짓고, 제일 위 복층에서 거실에 벽난로도 놓고 궁전처럼 꾸미고 살았다.
세계의 유명 관광지를 수시로 여행했고 특별관리 우수 고객이 될 정도로 동네 슈퍼 다녀오듯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두 딸도 상위 1프로로 키우기 위해 모든 지원을 했다. 아이들도 잘 따라줘 큰 딸은 국내 최고의 미대를 졸업하고 파리의 우수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지만 내겐 언젠가부터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쇼핑백을 들고 집에 들어설 때도, 최고의 요리를 먹어도, 멋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 속에서도 ‘이렇게 살아봤자 기껏 80~90년인데 이런들 뭐 하나?’,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혼자 있을 땐 TV 채널만 돌리며 온갖 공상으로 만리장성을 수없이 쌓았다 허물곤 했다.
그러다 둘째 딸의 권유로 춘천 한마음교회에 갔다. 늘 부활을 강조하시던 목사님께서 ‘한 번 가는 인생길이에요. 육체가 있을 동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 하시며 사도행전 20장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선포하셨다. 그러면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 달려갔다고 하셨다. ‘부활? 부활이 뭐?’ 그동안 들었던 부활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선포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라는 말씀이 크게 들리며 가슴을 강하게 때렸고, 이어서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내게 천지개벽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성경의 예언대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이 선명하게 비춰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증거’인 부활이 내 딱딱한 머릿속에 비수를 꽂는 반전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내 마음의 중심이 드러나며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더러운 찌꺼기들이 바닥까지 요동쳤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인 되어 예수님 믿지 않고 왕 노릇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태어나 가장 많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니 그 사랑에 푹 빠져 틈만 나면 성경을 보며 예수님과 독대하는 기쁨의 시간을 누렸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갈 건지가 분명해지니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부어졌다. 그날부터 내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식으로 복음을 전했고,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은 감동으로 복음을 받기 시작했다. 이젠 인생의 허허로움도,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공허감도 없다. 김치 하나를 먹어도 오케이! 길거리의 세일하는 옷도 무조건 오케이! 할 수 있는 것들이 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익숙해졌고 예수님 사랑의 감격은 임재로 깨닫게 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멘!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채영희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