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재추진 행정수도 이전, 이번엔 장벽 넘을까

입력 2020-08-22 04:02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왼쪽 두 번째)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단-국정과제협의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후 16년 만에 행정수도 이전을 재추진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인 것은 600여년간 내려온 관습헌법이라고 밝혔다. 관습헌법을 국회 입법으로 바꿀 수 없다는 논리다. 해당 결정은 법조계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문자로 된 헌법(성문헌법)이 존재하는데 실체가 불분명한 관습헌법을 근거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비판과 별개로 결정의 권위는 존중돼 왔다. 현재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다. 더불어민주당은 16년 만에 행정수도 이전을 재추진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 및 국정 비효율 해소가 명분이다.

행정수도 이전 방안으로는 특별법 제정, 국민투표, 개헌 등이 꼽힌다. 이 중 특별법 제정 방안이 유력하다. 다만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던 사안을 다시 입법하는 게 가능한지 의견은 엇갈린다. 입법을 추진하려면 충분한 국민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방법은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다만 헌법소원이 제기될 경우 헌재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불가능하다는 쪽은 위헌 결정이 난 법안을 다시 입법하는 건 반복금지 의무 위반이라 본다. 위헌 결정은 모든 국가 기관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 용어로 기속력이 있다고 한다. 중앙대 로스쿨 이인호 교수는 “헌재로 간다면 기속력에 반하는 것이라 본안 판단 없이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반복입법이 가능해지면 헌법 재판 제도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사라졌다는 게 확인되지 않는 이상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는 쪽은 애초 헌재 결정에 논리적 허점이 있었고 관습헌법이 국회 입법보다 앞설 수 없다고 본다. 관습헌법은 사실상 헌재재판관들이 스스로 헌법을 제정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헌재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법무법인 제민)는 “한 번 위헌이면 영원히 법을 못 만든다는 것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렵다”며 “시간도 많이 흘렀고 당시 결정에 비판도 많았기 때문에 지금 헌재에서는 위헌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도 방안 중 하나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외교, 국방, 통일 및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했다. 헌재는 관습헌법의 소멸 방법으로 국민투표가 고려될 여지도 있다고 밝혔었다. 어차피 개헌에도 국민투표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투표만 진행하면 절차도 간소화된다. 다만 행정수도 이전이 국민투표 대상인지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장 깔끔한 방법은 개헌이다. 하지만 행정수도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명분이 부족하고, 헌법을 전체적으로 개정하려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우려도 높다.

결국 법적으로 통과 가능성이 높은 건 국민투표와 개헌이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추진 가능성은 특별법 제정이 더 높은 셈이다. 다만 법조계에선 여야 합의를 해도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어도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를 결정한 공론화위원회 이상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여론조사를 몇 차례 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국민적 합의가 바뀌었다고 볼만한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근거 없이 판례 변경을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