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누가복음 5장 19절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 ‘기필코’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필코는 길을 만드는 힘이다.
앨런 쉔펠트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수학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그는 “수학 문제를 풀 때 필요한 건 수학적 재능보다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쉔펠트 교수 연구팀은 중·고등학생을 수년 동안 관찰하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대부분 중학생은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고등학생도 조금 더 긴 시간 문제와 씨름하다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그들 중 몇 명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계속 문제를 풀었다. 며칠이 지나도 문제를 붙잡고 있었다. 스스로 이해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문제를 파고들었다. 연구팀은 이런 아이들이 수학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몰입’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황농문 서울대 교수가 한 연구다. 중학교 2학년에게 아직 배우지 않은 미분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다. 역시 대부분은 포기했다. 몇 명은 달랐다. 포기하지 않고 집중했다. 이런 학생 중 150분 만에 문제를 푼 사례가 나왔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누가복음에는 중풍 걸린 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에게 중풍에 걸린 친구를 보이기 위해 네 명의 친구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집의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 보낸 이야기다. 여기에 창의성에 관한 놀라운 통찰이 담겨있다.
우리가 들것에 친구를 싣고 예수님을 찾아갔다고 상상해 보자.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다. 예수님은 무리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무리를 뚫고 예수님이 계신 집안까지 들어갈 틈도 없다. 이쯤 되면 대부분은 자포자기한다.
네 명의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문으로 갈 수 없다면 지붕을 뚫고라도 들어가자.”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큰 도에 이르는 길에는 문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들어가는 곳이 곧 문이라는 의미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고, 내가 들어가는 곳이 문이다. 지붕으로 들어가면 지붕이 길이자 문이 되는 것이다.
네 명의 친구가 해낸 창의적인 생각은 얼핏 보면 단순한 것 같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붕을 뜯어서라도 예수님께 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운 창의성이다.
이런 창의성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바로 집념에서 나온 것이다. 기필코 사랑하는 친구를 살리고 말겠다는 집념이다. 길이 없고 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자세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든 힘이다.
그들에게 이와 같은 적극적인 믿음과 집념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기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언젠가 다시오지겠지’ 체념하면서 다음 기회로 미뤘을 수도 있다.
보통 문제에 부딪히면 절망하고 포기한다. 반면 문제를 만나면 길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 문제를 오히려 기회로 삼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디딤돌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자세와 기필코 해내겠다는 자세가 만드는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소극적인 삶의 자세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감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다. 남는 건 불평과 원망뿐이다.
기필코 해내겠다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나온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무한한 에너지, 바다 같은 잠재력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도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지 말길 바란다. 무엇이든 기필코 해내는 하루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