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의 이낙연-센스맨 이재명, ‘총리·경기지사 징크스’ 깰까

입력 2020-08-22 04:05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7월 30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두 사람은 이날 회동에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지만 묘한 신경전도 감지됐다. 수원=윤성호 기자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 경쟁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정부 첫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세론이 흔들리면서다. 이 의원의 지지율은 4·15 총선 때 서울 종로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으며 최고점을 찍은 뒤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2위 주자였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면서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이 의원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질렀다. 3위 주자인 윤석열 검찰총장 외에 이렇다 할 야권 주자가 없는 상황이어서 이 의원과 이 지사의 경쟁 구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차기 대권 1, 2위를 다투는 이들 앞에는 징크스 하나가 버티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총리나 경기지사 출신 거물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징크스다. 이 의원이나 이 지사가 이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인자에 그쳤던 역대 총리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역대 총리들은 한 번도 ‘2인자’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회창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김영삼정부에서 총리를 지낼 때 ‘대쪽’ 별명을 얻으며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에게 3% 남짓한 차이로 패했다. 17대 대선에선 3위에 그쳤고 결국 정치판을 떠났다.

노태우정부에 이어 노무현정부에서도 총리를 지낸 고건 전 총리도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맡아 정국을 수습하면서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그의 기용을 “실패한 인사”로 혹평하면서 지지 기반을 잃었고, 결국 그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야인으로 돌아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열었던 김종필 전 총리도 ‘영원한 2인자’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까지 총리 출신이 대권을 잡지 못한 이유로 ‘관리형’에 가까운 총리 리더십이 대통령 자리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관료나 교수를 하다 총리가 된 인물이 많다보니 대선 주자를 향해 쏟아지는 정치적 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분석도 있다. 또 임기 말 대통령과 총리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경향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정치판에서 잔뼈 굵은 이낙연은 다를까
사진=뉴시스

‘총리 징크스’에 대해 이 의원 측근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의원은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쳤고 패배가 유력하다던 도지사 선거도 이겨냈다”며 “선출직을 거치지 않고 총리에 올랐던 전 총리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국회의원 5선에 전남지사까지 여섯 차례의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인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의원 본인도 신문기자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까지 두루 경험한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그간 쌓아온 연륜과 맷집은 그가 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날 선 질문을 능숙하게 받아치는 데 도움을 줬다. 이 때문에 대권 경쟁이 본격화된 뒤 더욱 거세질 정치적 공격에 이 의원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장수 총리를 지내며 체득한 국정 위기관리 능력도 이 의원이 내세우는 강점이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그는 최근 당내 유세에서도 ‘위기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의원이 돌파보다는 수비와 관리에 강한 리더십을 보인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위기관리 능력을 내세우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정치 문턱 넘지 못한 경기지사들

경기지사 출신 대권 주자들도 역대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인제 전 지사는 노동부 장관과 경기지사를 역임하며 얻은 인지도를 앞세워 대권에 도전했지만 15대 대선 때 3위에 그쳤다. 16대 대선을 앞두고는 노무현 돌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손학규 전 지사도 ‘불운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3위로 전망되자 탈당했다. 당을 옮겨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주자로 나섰으나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다시 도전했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패했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과 달리 경기지사는 상대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혀 왔다. 자신 있는 정책을 내놓으며 도정을 주도할 수는 있지만, 이 같은 정책 주도 능력이 중앙정치까지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감각·돌파력 앞세워 중앙정치 넘보는 이재명
사진=뉴시스

이재명 지사는 역대 경기지사 출신들과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슈 선점 능력’과 ‘선명성’이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코로나19 대응,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지사의 정치적 감각과 돌파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중앙정치, 중앙언론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전 경기지사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회의원 경험 없이 원외에만 머물다보니 당내 세력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이 지사 스스로도 “이재명계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기존 계파 정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의도 정치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지사가 SNS나 토론회를 통해 특정 정책을 제안하면 관심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식이다. 이 지사의 정책 주도 능력이 국회에서 발휘되는 동시에 의원들과의 관계도 개선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는 개인적 친분에 의존하기보다 정책 소통을 통해 의원들과 관계를 쌓아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현우 이가현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