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만난 이인영 “한·미 워킹그룹 재조정하자” 공개 요구

입력 2020-08-19 04:02
이인영(오른쪽) 통일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장관은 취임 후 처음 만난 해리스 대사에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 측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최현규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게 한·미 워킹그룹 기능을 재조정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문재인정부가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미워킹그룹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남북 협력을 중시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한·미 워킹그룹을 현행대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미 양국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이 발언은 비공개 면담자리가 아니라 기자들에게 모두 공개되는 모두발언을 통해 이뤄졌다.

이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해리스 대사를 만나 “한·미워킹그룹이 제재 관련 협의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 관계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동했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한·미워킹그룹을 겨냥한 여권 일각의 비판론을 전달함으로써 한·미워킹그룹 운영에 대한 불만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워킹그룹은 남북 관계와 대북 제재 이행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협의체로 2018년 11월 출범했으나 여권에서 남북 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날 면담은 두 사람 간 상견례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 장관은 “한·미워킹그룹은 운영과 기능을 재조정·재편하면서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명확히 지향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한·미워킹그룹이 남북 관계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장관은 “결국 한·미워킹그룹을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며 “저와 대사님이 한·미워킹그룹 2.0 시대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리스 대사는 즉각 한·미 워킹그룹을 종전대로 운영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은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북이 협력할 방법을 찾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면서도 “이동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이수혁 주미한국대사가 발언한 것처럼 한·미워킹그룹은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와 북한과의 관계 변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을 함께 추구한다”고도 했다.

해리스 대사는 그러면서 한·미 워킹그룹 재조정과 관련해 긴밀히 협의하고 싶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통일부는 사후 보도자료에서 “(두 사람은) 한·미 워킹그룹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데 공감을 표하면서 이를 위해 양국이 긴밀히 소통해 나가자고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