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가 ‘C형 간염 퇴치’ 경쟁에 시동을 걸고 있다. 대만은 C형 간염 퇴치 프로젝트에 한화 2조원을 투입했고, 일본은 무료 선별검사 및 치료비 지원 정책의 성과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숨겨진 C형 간염 환자를 적극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 목표다.
C형 간염은 증상과 예방백신이 없어 환자들이 감염 사실을 모르고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조기진단만 되면 99%이상 완치가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C형간염 퇴치를 목표로 전 세계 각국의 계획 수립과 적극적 시행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The Liver Week 2020 온라인 학술대회’에서 대만과 일본, 미국 그리고 국내 석학들은 ‘각국의 C형간염 퇴치 전략’을 주제로 집중 논의했다.
대한간학회를 비롯한 4개 간(肝) 연관 학회(한국간담췌외과학회, 대한간암학회, 대한간이식연구회)가 공동주최한 이번 학회 정책세션에는 첸젠런 전 대만 부총통도 참석해 대만 정부의 노력을 소개했다. 대만은 WHO의 2030년 퇴치 목표보다 5년 앞당겨, 2025년까지 C형간염 퇴치를 달성하겠다며 도전장을 내 주목되는 국가다. 2016년 국립 C형간염 프로그램 부서를 조직하고, 2019년 ‘C형 간염 퇴치 국가정책 강령’을 발표하는 등 C형간염 퇴치에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5세 이상 성인 대상 C형간염 검진 및 치료를 지원하며, 이를 위해 2018년부터 8년간 510억 위안(한화 약 2조935억원)의 예산을 투입, 2025년까지 전체 C형간염 환자의 82%에 해당하는 총 25만 명의 환자를 치료해 C형간염을 퇴치한다는 계획이다. 첸 전 부총통은 “이 정책으로 2040년까지 C형간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5만6000명 줄고, C형간염 합병증 감소로 390억 위안(한화 약 1조5744억 원)를 절감하는 성과를 이루어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오(Kao) 국립대만대 교수는 “대만의 C형간염 유병률은 4.4%로 추정된다. C형간염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라 국가적 간염 관리에 이미 30~40년 전부터 수년간 노력해왔다”며 “현재까지 대만에서 20만 여명의 C형간염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이 자리에서는 일본의 C형 간염 정책도 소개됐다. 일본은 일찍이 C형 간염 퇴치 정책을 시행해온 국가다. 칸토(Kanto) 일본 국립건강의학센터 박사는 “일본은 2002년부터 전 국민 대상 C형 간염 항체 검사를 지원하고 있다. 보건소 및 지자체 위탁 의료기관 등으로 구성된 간염관리 네트워크에서 무료 검사를 받게 된다. 생애 1회 무상 지원이고 매년 대략 1만 명 정도가 검사에 참여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형간염 선별검사에서 양성으로 진단되면 초음파 검사 등 정밀 검사로 치료 여부를 파악하고, 지역 거점 네트워크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방식이다. 치료비용은 일본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다.
C형 간염은 국내 암 사망률 2위 암이자 가장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이 큰 암인 간암의 주 원인 질환이다. 사망원인 통계연보에 따르면 C형 간염이 주요 원인인 간암은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암 사망률 2위로, 주요 생산활동 연령대인 40~50대에서는 사망률 1위다. ‘깜깜이 특징’으로 안타까운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세션의 좌장을 맡은 레이 킴(Ray Kim)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C형 간염의 증상이 없다고 해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은 마치 폐렴이 있는 환자에게 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약을 안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C형간염에 감염이 되었다면 일단 진단과 치료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부는 그동안 C형 간염 관련 다양한 정책을 마련했지만, ‘2030년 퇴치’라는 WHO의 목표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국내 C형 간염 환자는 약 30만 명. 이중 25만 명은 감염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잠재 환자다. 여전히 대국민 C형 간염 인지도는 B형간염의 절반(약 30%)에 불과하고, 치료 환자 비율은 저조해 보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 국가건강검진에 C형 간염 선별검사를 포함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된 바 있지만 국내 C형 간염 유병률(0.6~0.8%)이 국가건강검진 항목기준인 5%보다 낮고, 비용효과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도영 연세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C형 간염을 국가검진 항목에 포함하는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유병률, 비용효과성의 이유로 국가건강검진위원회 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국가검진에 포함되어 있는 만성질환들도 유병률이 5% 미만이다. 또 WHO와 미국 CDC 등 국제적 검진 가이드도 과거 유병률이나 특정 연령 중심에서 확대되어, 미국의 경우 18세 이상 성인 대상 생애 1회 C형간염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전국민 대상 국가검진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치료제도 보험이 되므로 국가 건강검진 체계에서 환자를 선별 진단하고 치료한다면 효과적으로 C형간염 예방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비용효과성 문제 또한, 이미 C형간염 선별검사의 비용효과성을 입증한 연구는 국내외 여러 논문에서 일관성 있게 이미 입증되어 왔다. 국가건강검진위원회에서 이러한 근거를 기반으로 검토된다면, C형간염은 선별검사가 국가건강검진에 포함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환자들도 국가건강검진에 포함하는 방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국가건강검진 중 40대 이상의 성인 대상으로 시행하는 위암 검진 대상에 C형간염도 같이 검진한다면, 무증상 C형간염 감염환자들을 진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위암 수검률은 약 62% 정도다. 검진을 받지 않는 나머지 30~40%의 대상들이 검진 받도록 하는데 홍보를 더한다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더했다.
정부는 우선 C형간염 퇴치를 위한 관리체계를 강화해나간다는 입장이다.
이형민 질병관리본부 과장은 “현재 국가건강검진에 C형간염 검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조기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는 C형간염 환자 조기발견을 위해 1964년생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질병부담 및 비용효과성에 대한 분석도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과장은 “최근 5년 동안은 중견 병원이 관리주축이 됐다면, 앞으로는 요양기관, 의원 중심으로도 간염 관리 체계에 대해 교육할 계획이다. 또한, 각 지자체를 통해 간염과 관련된 이슈 발생 시 역학조사 등 실질업무를 수행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