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앙감염병병원, 고속도로에 막혀 3년 넘게 공회전

입력 2020-08-19 04:03 수정 2020-08-19 15:14
국립중앙의료원을 새 부지로 이전해 현대화한 뒤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 보건복지부가 2017년 2월 9일 배포했다. 하지만 새 부지 선정을 두고 잡음이 일면서 3년 넘게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재확산하고 있지만 정작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 위한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은 3년 넘도록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새 부지로 이전해 현대화한 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이지만, 부지 이전 대상지였던 서초구 원지동 부지의 지리적 문제로 백지에서 다시 추진해야 할 처지가 됐다.

정부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한 국가 방역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하면서 신종 감염병이나 원인불명 질환 및 고위험 감염병 환자 등의 진단·치료·검사 등을 전담하는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구축 계획을 세웠다. 마침 메르스 사태 당시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됐던 중앙의료원이 1958년 건립돼 시설·장비 노후화가 심각한 만큼 이 병원을 현대화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키로 한 것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과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구축 사업을 함께 진행해 왔다.

하지만 사업은 계속 표류했다. 18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19회계연도 결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사업 지원에 배정된 예산 441억5600만원 가운데 집행기관인 중앙의료원이 실제 집행한 예산은 배정 예산의 5%에 불과한 21억4100만원이었다. 게다가 올해 들어 이 사업에는 지난해보다 300억원 넘게 깎인 131억8400만원이 배정됐다.


예산 집행 부진 이면에는 이전 대상지로 검토됐던 원지동 부지의 지리적 문제가 컸다. 애초 원지동 부지는 이곳에 서울추모공원을 설치하면서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하려는 방안으로 검토됐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인근인 데다 그린벨트에 묶여 있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정부는 2015년 기존 8차선이었던 경부고속도로 판교-양재 구간을 10차선으로 확장했다. 그런데 원지동 부지가 고속도로 인근이다 보니 도로 소음에 대한 우려가 컸고, 이로 인해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복지부는 고속도로 위에 방음 터널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는 방음 터널 설치를 위한 점검도로와 나들목 설치까지 요구했다.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원지동 부지가 그린벨트 안에 있다 보니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지역, 묘지공원에서 2종 일반주거지역 및 종합의료시설 부지로 변경해야 하는 문제가 남았다.

결국 복지부와 서울시는 원지동 이전 계획을 철회하고 지난달 1일에야 중앙의료원을 서울 중구 방산동에 있는 미 공병단 부지로 이전하기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11월 말까지 마련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처음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구축 사업을 계획할 때 부지 선정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화를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