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은 악인가… “고위 공직자 1주택 새 기준” vs “반시장적”

입력 2020-08-19 04:06

부동산 민심으로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가 ‘고위 공직자 1주택 보유’라는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로 출구를 찾고 있다. 청와대는 ‘주거 정의’를 강조하며 최근 임명한 수석비서관과 차관 등 고위 공직자가 모두 1주택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여당과 정부에서도 ‘고위 공직자는 1주택 보유’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확산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부동산을 투기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공직의 새 기준을 세웠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제도화되기 어렵고 반시장적 권고라는 비판도 나온다.

‘1주택’ 공직사회 뉴노멀

청와대는 대통령 지지율 부정 평가의 핵심인 부동산 문제를 ‘다주택자 고위 공직자의 1주택화’라는 프레임으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8일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당분간 1주택 보유를 기준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1주택이 공직사회의 새로운 문화, 기준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이런 기준을 세운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2주택, 3주택자 임명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실제로 지난 14일 이강섭 법제처장,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차관급 인사 9명을 발표하며 업무역량과 함께 1주택 보유를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업무 역량을 중심으로 발탁된 분들”이라며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에 주거 정의가 실현되도록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국민의 보편적 인식도 고려해 종합적으로 인선했다”고 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참모에게 권고한 ‘1주택 보유’가 정부 차관급 인사에게까지 확대된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청와대 참모 중에도 다주택자는 황덕순 일자리수석, 여현호 국정홍보비서관 등 단 2명만 남았는데 이들도 이달 중 1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매각할 예정이다. ‘똘똘한 한 채’ ‘직보다 집’ 등 청와대 참모들이 부동산 매각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어쨌든 노 실장의 권고를 통해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새 기준을 마련했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여당도 나란히… 야당은 비판

여당도 청와대의 1가구 1주택 기조에 발맞춘다는 기조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큰 원칙이 1가구 1주택인 만큼 당 역시 정부 및 청와대와 같은 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필요에 따라서 2채 이상을 가진 의원이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이 워낙 심각하다”며 “우선 고위 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해서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규제지역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총선 출마자에게 ‘다주택 처분’ 서약을 받았다. 애초 처분 기한을 ‘2년 내’로 정했지만, 부동산 논란이 계속되자 ‘연내 처분’으로 앞당겼다. 다만 당 일각에선 개별적인 사정이 있음에도 일괄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다주택자 여부를 공직자 임명 기준으로 삼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의원은 “일시적으로 2주택 내지는 1주택 1전세가 될 수 있는데, 그런 것까지 억누르려는 것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투기는 규제할 필요가 있지만, 모든 사람을 투기자로 규정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추경호 의원도 “중요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라고 한 사람을 뽑는 기준이 다주택자 여부가 돼서는 안 된다”며 “무주택자를 찾을 것 같으면 어려운 사람 중 한 사람을 선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상훈 의원은 “획일적 기준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다주택자를 부적절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의도는 좋지만…시장경제 역행 우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청와대발 ‘1주택 뉴노멀’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라는 선의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평가하면서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참모들을 고르면서 정책 방향, 공직자 처신의 방향을 보여준 건 긍정적”이라며 “솔선수범한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1주택이나 무주택자를) 임명 기준으로 삼다 보면 인사 풀(pool)이 협소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1주택) 추진 의지가 뚜렷한가, 진실성이 있느냐는 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여러 사유로 2주택, 3주택도 되는데 이걸 획일적으로 다주택은 나쁘다는 선입견을 주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식이나 현금 등 여러 자산 중 유독 부동산만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 의도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수요 공급’이라는 시장의 움직임을 상당히 무시하는 정책”이라며 “시장경제의 근본을 위협할 수 있다. 어떤 자산은 좋고 어떤 건 나쁘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불법 취득한 재산이면 문제지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재산이 많다는 걸 범죄로 보면 안 된다”며 “정당히 부를 축적했고 세금도 냈는데 이를 적대시하거나 범죄시해선 안 된다”고 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 기조에 맞추겠다는 취지지만,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역행하는 기준”이라며 “정책을 이런 식으로 푸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성수 손재호 박재현 김용현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