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한국에 손 내미는 중국

입력 2020-08-19 04:05

“1979년 덩샤오핑 방미 이후 5년간 중국 학생 1만9000명이 미국 대학에서 물리학, 보건과학, 공학을 전공했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카터 대통령은 중국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했다.” “1981년 레이건이 서명한 국가안보 지침 11호에 따라 펜타곤은 선진 육해공 전략 기술과 미사일 기술을 판매했다. 이듬해 서명한 12호에 따라 중국의 핵 프로그램 발전을 지원했다.” “레이건 정부는 유전공학, 자동화, 생명공학, 레이저, 우주기술, 유인우주선, 인공지능, 로봇 분야를 연구하는 중국의 연구소에 자금과 교육을 제공했다.”(마이클 필즈버리 ‘백년의 마라톤’)

미국과 중국은 요즘 극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오늘의 중국을 키운 건 미국이었다. 1969년 소련과의 국경 충돌로 고립무원이 된 중국은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마오쩌둥은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초청해 ‘핑퐁 외교’ 드라마를 썼다. 1979년 1월 방미한 덩샤오핑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서방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렸다.

중국은 이후 개혁개방과 미국의 도움으로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의 ‘넘버 투’가 됐다. 중국은 “힘을 드러내지 말라”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도 폐기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외치고, 군사력에서도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뒤늦게 ‘괴물’을 키웠다고 후회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과거 대중국 포용정책이 전 세계에 밝은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고 토로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중국을 개방시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냈다고 자책했다. 미국은 무역·기술전쟁과 남중국해, 홍콩 문제 등으로 중국에 전방위 공세를 펴고 있다. 중국에 대해 공산당이 지배하는 불량국가, 서방세계와 다른 전체주의 국가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짜놓은 프레임에 스스로 걸려들고 있다.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해 홍콩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홍콩 선거도 연기했고, 반체제 인사 탄압도 노골화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홍콩 사태를 통해 너무도 이질적인 중국식 사회주의체제의 진면목을 보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책임 떠넘기기에 이어 방역을 못한다고 서방 국가들을 꾸짖으며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또 인도와의 국경 충돌로 13억 인도인을 모두 적으로 만들었다. 주적인 미국과 싸우느라 눈감고 사방에 총질을 하다 보니 곳곳에 적을 만든 꼴이다.

결국 중국은 너무 일찍 발톱을 드러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는 마오쩌둥 시대의 재앙인 대약진운동처럼 ‘시진핑 1인 체제’가 가진 리스크일 수도 있다. 잦은 외교적 헛발질 탓에 이제 중국의 친구는 러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남미 국가 정도다. 중국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던 일본도 요즘 반중으로 돌아섰다. 그나마 한국이 중립지대에 남아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곧 방한한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 때 혼밥을 먹게 했던 중국이 다급해지니 한국에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벌써부터 시 주석의 연말 방한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시 주석이 오더라도 우리에게 줄 선물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한령(限韓令) 해제는 진작 풀렸어야 할 조치이지 새로운 선물이 아니다. 중국이 우리 기업에만 특혜를 줄 리도 없다. 오히려 양제츠가 미국 쪽에 너무 치우치지 말라고 경고하러 오는지도 모른다. 괜히 미·중 싸움판에 휘말릴까 걱정도 된다. 중국이 내미는 손을 잡을 때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