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남성’의 각성을 그린 ‘마녀의 법정’(2017)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마녀재판은 종교 권력을 쥔 남성들이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고문하고 죽이고 재산을 빼앗은 사법의 흑역사가 아니던가.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을 ‘너희들이 미처 죽이지 못한 마녀의 후손’으로 정체화한다. ‘마녀의 법정’은 법으로부터 소외당하던 여성이 법의 주체가 돼 펼치는 이야기를 담는다.
마이듬(정려원)은 여성아동범죄 전담반 검사다. 드라마는 ‘미러링’의 구도를 취한다. 마이듬 외에 부장검사, 판사, 변호사, 기자 등이 다 여자인 가운데,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를 내는 남자 검사가 나온다. 마이듬이 출세 지향적인 7년 차 검사인 데 비해 파트너 남자 검사는 피해자에 공감하는 조신한 신입이다.
‘마녀의 법정’은 성범죄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룬 에피소드로 성범죄의 본질을 숙고하게 한다. 성범죄 사건은 증거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회유·협박하는 일이 많고 피해자들이 자책과 2차 가해에 시달리다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일이 잦다. 때문에 법정 형량이 낮지 않음에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고 범죄가 반복된다. 드라마는 바로 이런 문제를 명확하게 짚는다.
또한 성범죄는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여교수가 남조교를 강간하려는 사건이 벌어지고 남성 피의자가 여성 검사를 불법촬영하고 협박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젠더 권력과 사회적 권력이 경합하고 교차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마이듬이 여자이기 때문에 배려심이 높다거나 피해 여성들과 본능적으로 공감하는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마이듬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남성과 동일시 해온 ‘명예 남성’에 가깝다. 특수부 검사로 출세하고픈 마이듬은 부장검사의 성추행을 덮기 위해 피해자인 여기자를 회유할 만큼 남성 권력에 빌붙은 존재였다. 그러나 결국 부장검사의 성추행을 까발리게 되는데 이는 그가 착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연대의 공고함을 확인하고, 남성 권력에 빌붙는 것이 자신의 출세에 유리하지 않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아동 범죄 전담반에 가서도 피해자의 심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자신도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비로소 여성주의적 각성을 하게 된다.
판사의 좌충우돌 성장기 ‘미스 함무라비’(2018)
드라마는 정의로운 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의 좌충우돌을 담는다. 출근 첫날 지하철 성추행범을 응징하고, 성추행 피해자의 복장에 대한 부장판사의 지적에 미니스커트로 또 니캅으로 응수하는 장면은 코믹하고 통쾌하다. 올바름을 향해 맹진하는 여성 영웅 서사의 느낌을 풍기는데 1980년대에 ‘인간시대’의 장총찬이 했던 역할을 21세기에 박차오름이 하는 셈이다. 하기야 성별 계급을 넘어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장하려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주체로 여성 판사를 내세운 것은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는 미러링을 자주 활용한다. 박차오름은 동료 남성 판사들을 재래시장의 ‘이모’들에게 데려가 성희롱을 경험해보도록 하는 식이다. 하지만 미러링을 통해 현실에 엄존하는 젠더 권력을 우스개로 휘발시키지는 않는다. 직장 내 성희롱을 엄벌하는 법원의 판결에 여성들이 환호하지만, 밤거리의 남성들에게 둘러싸이자 무술유단자인 여성조차도 위축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직장 내 성희롱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성희롱 사건이 터지자 회사는 여론을 의식해 가해자를 즉각 해고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해고무효 소송에 패소하고 그를 복직시키려는 전략을 세운다. 소송과정에서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동료직원들의 2차 가해성 증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판사의 집요한 질문에 직원들은 자신도 가해자에게 똑같은 피해를 당했다며 폭로한다. 이를 보던 가해자의 아내마저 남편의 변호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며 폭로한다. 한 사람의 증언이 다음 폭로의 기폭제가 되는 미투 운동을 직접 환기한다.
드라마는 경찰·검찰·법원 등 국가기구를 저항과 비판의 대상으로 보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활용하고 교섭할 대상으로 여긴다. 즉 국가기구를 그 안에서 박차오름 같은 이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움직이는 생물로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부 개혁을 하려는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인적 쇄신을 통해 구조가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시민 사회적 바람이 존재한다. 요컨대 소수자 보호와 실질적인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사법부의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박차오름과 같은 여성 법관의 임용과 승진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함을 자연스럽게 일깨운다. 근래 신규 임용 법관의 절반이 여성이고 성적도 매우 우수하지만, 전체 법관 중 여성 법관의 수는 아직 소수다. 위로 올라갈수록 남성 법관들의 카르텔이 공고한 탓이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롤 모델 ‘검사내전’(2019)
여성검사 차명주는 정려원을 고리로 ‘마녀의 법정’의 마이듬을 승계하되, ‘똘끼를 뺀’ 안정감과 성숙함을 지닌다. 드라마는 이선웅(이선균)을 관찰자로 삼아 차명주를 보는 구도를 취한다.
둘의 관계는 ‘마녀의 법정’이나 ‘미스 함무라비’에 나오는 파트너십과는 다르다. 차명주와 이선웅 사이에는 로맨스가 없고 견제와 경쟁이 팽팽하다. 하기야 여성이 직장에서 만나는 남성이 낭만적이거나 우호적인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 경쟁하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동료일 가능성이 크다. 직장 내 성추행과 성희롱이 만연한 상황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이성에 대해 로맨스를 빼고 사고할 것을 권장하는 상황에서 매우 바람직한 구도이다.
차명주의 캐릭터는 성공한 직장여성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롤 모델이 될 만하다. 차명주는 실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며 친목에 끼지 않는다. 또한 잘못하지 않은 일에 미안해하지 않으며 옳은 일을 했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출세욕과 정의감을 조화시키며 부당한 외압에도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윗사람을 굴복시키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이타심과 반골기질을 내세워 저항하는 이선웅의 단선적인 태도보다 우월해 보인다.
드라마는 잘난 여성 차명주가 여성들과 화해와 연대에 이르는 과정을 묵직하게 그린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차명주는 대학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나와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아간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명주는 남편을 살해한 할머니를 심문하다가 감정을 폭발시킨다. 평생을 남편에게 맞고 살던 할머니에게 자신의 엄마에 대한 감정이 겹쳐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맞는 모습을 며느리에게 들킨 날, 남편을 죽여버린다. 며느리의 경악하는 눈을 통해 소멸했던 자존감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아들은 엄마가 평생을 맞고 산 사실을 몰랐다고 말한다. 그에게 가정 폭력은 자기 일이 아니었기에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었다. 차명주는 자신도 피해자였기에 모른 채 살아갈 순 없었지만 맞고 사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깊었다. 차명주는 살인범이 된 할머니를 통해 비로소 엄마와 화해하게 된다.
한편 차명주가 육아로 힘들어하는 동료 여성 검사와 날을 세우다 화해하는 장면도 감동적이다. 차명주는 기혼 여검사를 한심하게 여겨왔지만 잠시 아이를 돌보는 경험을 통해 그의 초인적인 노력을 응원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는 전문직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차별을 겪으며 배려랍시고 휴직이 권고되는 것 역시 또 다른 차별임을 지적해낸다. 무엇보다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의 대립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구도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인 각성을 담고 있다.
그밖에도 사내 성폭행 사건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직장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활용하는 전략이 결국 성추행의 구실이 되는 아찔한 구조를 보여주며, ‘순결한 피해자상’에서 벗어난 피해자를 향한 편견과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그린다.
세 작품 이외에도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조사관 등 전문 직업을 지닌 여성 주인공들의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명예 남성’이 되거나 ‘여성성을 활용하는 것’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는 드라마들이 더 많이 나와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