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상상하는 방식

입력 2020-08-22 04:05

지금까지는 글쓰기에서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 왔다. 글쓰기와 상상력의 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만큼 중요하지만 그걸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남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상상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느냐일 테다. 이 문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다양한 대답이 가능해서다. 답이 여러 가지면 실천 방도 역시 여러 가지라는 뜻이니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로울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다는 건 어떤 답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어쩌면 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이야말로 상상력을 실현할 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황일 수 있다. 무엇에도 만족하지 않는 정신이야말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다양한 대답 가운데 내 마음을 끄는 한 가지 대답이 있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쓰는 불굴의 기자 정신을 뜻하는 카파이즘이라는 용어는 종군 사진기자였던 로버트 카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카파를 모른다 해도 그의 사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스페인 내전에서 한 병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비롯해 2차 대전을 담은 사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하는 병사를 찍은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한데 이 사진을 게재한 잡지는 아예 이런 식의 설명을 붙여놓기도 했다.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카파는 숱한 전쟁을 취재하며 많은 보도사진을 남겼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 미학으로 잘 알려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함께 사진작가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매그넘이라는 사진가집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매그넘의 사진전이 우리나라에서 열리곤 했다. 그는 죽음마저 극적이어서 한 손에 카메라를 쥔 채 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카메라와 함께였고 그가 찍고자 했던 전쟁터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돌아보는 이유는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기자 정신을 엿볼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누군가 그에게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이 찍은 사진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피사체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시인이 쓴 한 편의 시와 소설가가 쓴 한 편의 소설처럼 사진작가에게 한 장의 사진은 그이가 담아내고자 했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이는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 한 장면을 찍었을 테고 그 사진은 사진작가의 상상력이 실현된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카파에게 상상력을 실현한다는 건 자신이 찍고자 하는 대상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걸 뜻한다. 상상력은 이런 식으로 실현된다.

글쓰기의 경우에도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뜻은 카파가 그랬듯이 글로 쓰고자 하는 대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피사체에 다가가는 행위는 물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이므로 사진작가에게는 가능한 태도지만 소설가에게는 어려운 태도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인물이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달려 바닷가의 한적한 마을에 도착했더라도 소설가는 인물을 따라 자신이 앉은 책상 앞을 떠나 그 마을로 달려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사진작가와 달리 소설가는 펜을 쥐고 책상 앞에 앉은 채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소설가가 대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그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건 바로 오감을 동원해서 상상하기다. 우리가 지닌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지금 글로 쓰고자 하는 대상에 다가가야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만이 아니라 알지 못했던 것까지 알아내야 하는데 이 신비로운 과정은 오감을 동원해서 대상에 다가갈 때에만 가능해진다. 육감은 여섯 번째 감각도 아니고 초감각도 아니다. 육감은 다섯 가지 감각을 동원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신비로운 상태이며 카파가 피사체에 한 걸음 다가가 만나게 된 상태도 이것이다.

애초에 이 글을 쓸 때 나는 상상력을 실현하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방식을 밝히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보편적이고 관념적인 결론으로 되돌아가고야 말았다. 카파처럼 목숨을 걸고 상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실현할 수 없다. 손에 펜을 쥔 채 글을 쓰다가 죽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말이다.

손홍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