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27·끝) 성경으로 벽 꾸민 박물관·미술관 건립이 꿈

입력 2020-08-19 00:02
석창우 화백이 2018년 1월 떠난 이스라엘 성지 순례길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모습.

사람들은 계획을 많이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무엇을 할까 고민할 필요 없다. 그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프로그램에 동참하기만 하면 된다. 1984년 불의의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이후 내 삶을 돌아보면 드는 생각이자 깨달음이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껴보고자 2018년 1월 20여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순례길을 떠났다. 예수님이 태어나고 활동하신 곳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는 곳까지 둘러봤다. 성지 순례길을 따라 걸으며 현장에서 받은 느낌을 곧바로 그림으로 그려내는 작업도 했다. 가이드가 이 성지는 예수님이 무엇을 한 장소라고 설명하면 난 재빨리 스케치북과 두루마리 화선지 등 화구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순례길 곳곳에서 만난 예수님의 일생과 평화의 말씀을 화폭에 담았다. 한번은 넓은 장소가 있어 두루마리 화선지를 펼쳐 놓고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모습,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모습,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모습 등 14개로 나눠 그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며 사진도 찍었다. 8m 10cm짜리 그림이 완성됐다.

하루는 예수님의 무덤 근처에 있던 한 성당을 찾았다. 여러 종교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곳이라 해당 단체 사람 외에는 출입이 금지됐다. 그날도 출입이 안 되자 난 속으로 예수님께 ‘예수님을 만나러 왔는데 왜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예수님은 일행 중 한 신부님을 통해 일반 사람들이 못 보는 성지까지 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한국으로 돌아온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석창우성경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건물의 외벽은 구약성경을 도판에 양각으로 새겨 구워 붙이고, 내부 벽은 신약성경으로 도판을 음각으로 만들어 붙여 완성하고 싶다. 그 안에 성경 필사한 작품들을 족자로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 내 꿈이다.

최근엔 평소 교류하던 송길원 청란교회 목사님의 추천으로 ‘잠자는 마을’ 프로젝트에 건축물 공사 기금 홍보대사로 참여하고 있다. 고국에 돌아온 뒤 갈 곳이 없는 해외 선교사들을 위한 치유 프로젝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기에 이를 십자가 사랑으로 이겨내 보자는 의미를 담은 그림 작업도 한다.

보통 작가들은 고뇌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난 고뇌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즐거운 작업을 하는데 왜 고뇌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림으로 그릴 소재를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을 즐겁게 살다가 주님 곁으로 간 작가로 기억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화가로서 큰 무대에 서고 성공하기까지 아내와 가족,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자릴 빌어 내게 도움을 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