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대혼란 직감? 뉴욕 월가에 심상찮은 움직임

입력 2020-08-18 00:19

지난 3월 이후 강세장을 이어 온 미국 뉴욕 월가에 심상찮은 투자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부상하면서 3개월 남은 대선 이후 증시의 급변동에 투자하는 옵션, 선물 투자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대선 승자 확정이 지연될 것을 우려하고 이 같은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12월 만기 상품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의 고객 서한을 발송했다. 특히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의 대선 소송사태가 벌어진 2000년 당시를 상기시켰다.

140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브리지워터도 비슷한 내용의 고객 서한을 발송했다.

이처럼 월가 투자은행과 헤지펀드 운용사 등이 대선 결과에 비관적인 것은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가 최근 트위터에서 대선 연기 주장을 언급하고 우편투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자칫 선거 결과에 불복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지지율이 트럼프에게 11% 포인트가량 앞서고는 있으나 지지층이 견고하지 못한 것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근 WSJ-NBC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을 찍겠다고 응답한 사람의 58%가 트럼프를 못 믿기 때문이지 바이든이 좋아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 점은 이번 대선이 초박빙으로 치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대선 혼란 우려는 경기회복 지연 및 겨울철 코로나19 재창궐 우려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보통 미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에는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7차례 치러진 대선에서 VIX는 한 달 전부터 대선 당일까지 평균 3.7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2000년 대선 때보다 더 큰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10월 만기 VIX 선물 투자 시 고객들이 9월 만기 상품 대비 지불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해의 경우 2004년 대선 이후 4차례 평균치의 배로 늘어난 데서 엿볼 수 있다.

또 만기가 길수록 통상 선물 계약에 지불하는 비용이 더 큰 게 상식이지만 대통령 취임과 겹치는 내년 1월 만기 선물 계약이 그 이후의 상품 비용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회사 스파이더록투자자문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내년 초까지 25% 떨어질 경우 수익을 내는 주식 옵션 거래 상품을 내놨을 정도다. 에릭 메츠 최고투자담당자(CIO)는 “최근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주식 시장 상황에 대한 우려가 대선 혼란 전망과 겹치면서 이런 헤지 상품 투자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혼란을 예상해 안전상품인 금의 강세에 옵션 투자를 권고하는 운용사도 늘고 있다. RBC캐피털은 고객들에게 1월 만기 금투자 옵션 거래를 권고했다. 대표 상품이 내년 1월을 겨냥해 상장지수펀드(ETF)가 10%가량 오를 것에 베팅하는 ‘SPDR 금트러스트’ 연계 옵션 거래다.

780억 달러 규모의 SPDR 금 ETF는 지난달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주식 순매수 8위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금 투자 상품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