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는 요즘에 여당과 야당에서(비록 여야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같은 주장이 나와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국회의원직 4연임을 제한하는 입법을 발의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오죽 크면 의원들이 스스로 이런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일까 싶으면서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작지 않다. 코로나 사태에 긴 장마로 수해까지 겹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당장의 대중적인 관심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의원직 연임 제한 문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임이 분명하므로 공론화를 통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의 뿌리는 국회 및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있다. 그런데 과연 연임 제한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과거 총선에서 초선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는 이른바 물갈이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이 다수였던 국회에서도 여의도 정치를 바꾸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치불신을 해소하지도 못했다. 그 원인이 당시 살아 남았던 다선 의원들 때문일까?
국회의원으로서 다선을 했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건 국민(또는 지역주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만일 부적절한 인물이 계속 당선되는 것이 문제라면 공천 방식 또는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다선이라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으로 연임을 제한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의원 연임 제한이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연임 제한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나 단체장은 그 개인이 조직의 책임자로서 방대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오남용 문제가 훨씬 크다. 그 때문에 연임 제한이 세계 각국에서 인정되고 있다. 반면에 의원들은 의회 구성원으로서 공동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권한의 오남용 우려가 훨씬 적기 때문에 서구 선진국에서도 의원직 연임 제한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의원들에 대한 연임 제한이(대통령이나 단체장과는 달리)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근거일 뿐 대한민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연임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박하기에 충분한 논거는 되지 못한다.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의원직 연임 제한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연임 제한의 득과 실을 신중하게 비교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연임 제한은 의원들의 직무충실성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특히 마지막 임기 4년 동안 모든 것을 불태워 열심히 의정활동을 할까. 아니면 연임 가능성이 막혔으니 대충 하려 할까. 일각에서는 연임 제한을 통해 청년 정치인들의 국회 입성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청년 의원들은 12년 후에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들로 인해 12년 후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과열되고, 공직 유관단체의 임원 자리까지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아닐까.
국회의원이 직업정치인이라는 점을 흔들려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선거로 인해 직업의 계속성과 안정성은 약하지만 그렇다고 국회의원을(과거의 지방의원처럼)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는 것은 더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서 명예직이지 결국은 보수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지역 유지들의 전유물이 돼 비리의 온상이 되었던 경험을 되풀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국회의원들이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것에 있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것이 능사일 순 없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의원이라면 재선도 불가능해야 할 것이고, 능력 있고 신뢰받는 의원이라면 4선, 5선이 왜 문제이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선거제도가 국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청년 정치인들의 국회 진출도 필요하고, 다선 의원들의 지도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조건 다선 의원이 청년 정치인에 우선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구체적인 판단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국민이 선거를 통해 내려야 한다. 이러한 국민의 판단을 배제하고 다선 의원들을 무조건 배제하는 제도가 또 다른 형태의 고려장(高麗葬)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