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행동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보여야 한다

입력 2020-08-18 04:06

광복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K방역이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한국의 저력은 세계에 알려졌고 이제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됐다. 그러나 유독 일본과의 관계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한·일 양국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한국이 일본을 싫어한다는 비율은 70%,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는 비율은 62%로 이전보다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한·일 관계 개선 과제로 한국은 여전히 독도와 강제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보는 반면 일본은 대화나 경제교류 등의 실익 추구 문제를 들고 있다. 한국의 일본에 관한 이미지는 이익과 전략보다는 과거사의 아픈 추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감정의 골이 한·일 갈등과 대립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한·일 관계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상태이다.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에 대한 주식 압류의 강제집행(현금화 조치)이 이뤄지는 경우 일본 정부가 보복조치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연설에서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 의지를 부각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해 양국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어 그 해법 찾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강제징용에 관한 해법을 놓고 백가쟁명식으로 많은 제안이 있었다. 즉 정부 차원의 1(한국 기업)+1(일본 기업), 1+1+α(정부 출연), 국회에서의 문희상안,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이 논의됐지만 양국 정부의 반발이나 여론의 반대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문제의 근원은 일본에 있다고 한국은 생각하지만, 일본 역시 한국을 탓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일본에 도덕적 자세를 요구하면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일본은 받아들일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을 탓하고 한국에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일본의 태도 변화 이외에 어떤 해법을 내더라도 한국 내 불만을 잠재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한·일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법은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극단적 법적 해결을 한·일 양국이 수긍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양국 정상들은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상대방에게만 요구하고 있다. 양국이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정상들이 정치적 책임을 짊어지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의 8·15 연설처럼 ‘일본과 한국의 공동 노력이 미래협력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선 한·일 정상이 움직일 수 없다면 정부 간 교섭이라도 활발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그러나 정부 간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기가 힘든 것이 문제다. 이전에는 양국의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 내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었다. 현재 한국 정부 내에 일본 인맥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부가 남북 관계에 몰입한 나머지 국제관계 전문가들을 중시하지 못한 결과다.

정부 간 신뢰가 없다면 정계 또는 재계의 유력자들이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마저 한·일 관계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해 적당한 인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일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정부 책임이다. 지금이라도 현안인 한·일 관계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주무부처와 정치권이 대화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