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CVC’ 도입… 편법 경영승계 통로되나

입력 2020-08-18 18:16 수정 2020-08-18 18:17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가 정부 CVC 제한적 허용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효상 쿠키뉴스 기자

“재벌의 지배력 강화 편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죠” 지난 11일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신동화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정부의 ‘제한적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벤처투자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완화된 규제 정책이 자칫 재벌의 경영승계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에서다. CVC는 재벌 총수의 지분 늘리기를 허용해준 정부의 악수일까. ‘제한적 CVC 도입안’에 대한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

일반지주의 벤처투자, CVC란?

CVC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의 약자다. 일반적으로 회사 법인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보통 대기업 집단(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이거나 10조원 이상)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을 지칭한다. CVC는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 등에 투자한다.

국내 대기업의 벤처 투자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제약이 많았다. 금산분리 원칙은 은행업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과 제조업 중심의 한 산업자본이 서로 업종 소유를 금지하는 것이다. 정부는 금융과 산업이 결합될 경우 많은 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금산분리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번 CVC 추진방안에 따르면 국내 CVC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자)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 등으로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분 구조는 일반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자회사로 규정했다. 부채 비율은 자기자본 200%를 넘어선 안 된다.

경제계 ‘환영’… 실효성 의문

정부가 CVC 제한 도입안을 발표하자 경제계는 환영했다. 한국벤처기업협회와 한국바이오협회 등 12개 벤처 관련 단체는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통해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돼 민간 자본의 벤처투자를 더욱 활성화하고 신산업육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대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은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성장기반을 조성,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상생하는 한국형 혁신생태계를 구축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당 내부거래 합법화”

시민단체는 기업 경영승계에 악용 소지가 있다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신동화 간사는 CVC 문제점으로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를 꼽았다. 다음은 CVC 쟁점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정부의 CVC 제한적 허용안이 도입돼선 안 되는 이유는?

▶투자자금 중 외부자금 비율을 최대 40%로 허용한 점이 특히 우려된다. 현재 30대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950조에 이르는 수준이다. 정부가 밝힌 대로 대기업집단(37개) 일반지주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해도 약 25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CVC의 투자펀딩에 외부자금을 허용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마찬가지 이유로 일반지주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했음에도 CVC의 부채비율을 자기자본의 200%까지 허용한 것 또한 타인의 자금을 동원한 재벌의 경제적 지배력 강화를 허용한 것으로 비판할 수 있는 대목이다.

-CVC 제한적 허용안이 기업 경영승계에 악용될을 우려하는 이유는?

▶기업은 수익을 따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일반지주회사의 CVC가 도입되면 합리적 투자가 아닌 계열사인 당사 CVC로 자금이 몰릴 우려가 있다. CVC는 공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효과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업 유보금만으로 벤처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는 항목도 정부안에 꼭 포함돼야 할 사항이다.

-올바른 정책방향은?

▶규제완화로 만든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또 다른 규제완화를 생각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위기 해소를 빌미로 이뤄진 규제완화는 사회적 양극화 심화 및 부의 독점을 강화한 전례로 이어진 사실이 지속해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정책의 일순위는 재벌개혁과 공정경제 구조 확립을 통한 경제력 집중 방지와 사회적 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신민경 쿠키뉴스 기자 smk503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