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등원’이 논란이 됐다. 국회 본회의장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초선 여성의원에 대해 국회 복장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러자 국회복이란 게 따로 있느냐며 원피스 등원을 ‘탈권위 행보’라고 지지하는 의견도 이어졌다. 류 의원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나는 입법노동자이고 국회는 내 일터”라면서 “국회의 권위는 복장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치인의 복장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관습적인 ‘정치인 룩’ 대신 파격을 선택했다가 논란의 중심에 선 정치인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꽃무늬 원피스는 물론이고 어깨를 훤히 드러내는 오프숄더나 모자가 달린 후드티, 축구 유니폼까지 논란이 된 복장도 다양하다. 복장 논란의 주인공이 대부분 여성 정치인이라는 공통점도 발견된다.
영국 브라빈 의원의 오프숄더 원피스
영국에서는 제1야당인 노동당의 트레이시 브라빈 의원이 지난 2월 오프숄더 원피스를 입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브라빈 의원이 어깨가 노출된 형태의 옷을 입고 하원에 출석하자 영국 SNS에서는 의원 복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쇄도했다. “더 벗지 그러냐” “술집 여자냐” 등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왔다.
브라빈 의원은 논란에 대해 “음악 행사에 다녀오는 길이어서 옷을 갈아입을 여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겪은 의상 논란은 여성들이 매일 겪는 성차별을 보여준다”며 “여성의 외형은 남성에게 있어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여성 정치인에게 유독 가혹한 복장 잣대를 지적한 것이다. 이후 브라빈 의원은 당일 착용한 원피스를 경매에 부쳐 수익금 전액인 2만200파운드(약 3100만원)를 여성단체에 기부했다.
美여성의원들 “팔 드러낼 권리 있다”
2017년 7월 미국 의회에서는 마샤 맥셀리 의원을 필두로 한 여성 의원 20여명이 ‘민소매 금요일(Sleeveless Friday)’ 시위를 벌였다. CBS방송 여성 취재진이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의회 출입을 제지당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의회에선 민소매 외에도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도 착용 금지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의원들이 단체로 민소매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자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정답은 없었다. 미국 의회 규정이 남성 복장을 재킷과 넥타이 등으로 규정한 반면 여성 복장에 대해선 ‘적절한 의복(appropriate attire)’으로 모호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특정 의복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민소매는 관례상 입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올 뿐이었다. 루실 로이벌 알라드 하원의원은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금은 1817년이 아니라 2017년”이라며 “여성들은 맨 팔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폴 라이언 당시 하원의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맞게 비즈니스 정장 문화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겠다”면서 복장 문화 개선 의지를 밝혔다.
후드티에 청바지 입은 캐나다 의원
지난해 11월 캐나다에서는 국회의원의 ‘후드티 등원’이 화제가 됐다. 논란의 주인공인 캐서린 도리온 퀘벡주 의원은 핼러윈을 맞아 어두운색의 청바지와 주황색 후드티를 입고 의회에 등장했다가 동료 의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의회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복장 때문에 의회가 시끄러워지자 도리온 의원은 “소동이 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등원하자마자 급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도리온 의원은 지난해 10월에도 의사당 내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레드룸’의 책상 위에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앉아 사진을 찍은 전력이 있다. 그녀는 이런 행동에 대해 “기성 정치인의 엄격한 정장 문화를 풍자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도리온 의원은 이후 방송에 출연해 후드티를 입은 이유에 대해 “의회는 국민의 것”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하기 위해 입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논란의 후드티는 경매에 부쳐져 2900달러에 낙찰됐으며 수익금은 전부 퀘벡주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단체에 기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축구 유니폼 의원 때문에 ‘복장 규정’
2012년 프랑스에서는 세실 뒤플로 국토주택 장관의 옷차림이 도마 위에 올랐다. 녹색당 출신의 뒤플로 장관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부의 첫 각료회의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가 하면 파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의회에서 연설했다. 남성 의원들은 원피스를 입은, 당시 30대의 뒤플로 의원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관심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튀는 복장을 선택했다”고 야유했다. 이에 뒤플로 의원은 “내 옷이 분노를 일으킨다면 지금 당장 옷을 벗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복장 때문에 벌금을 낸 의원도 있다. 2017년 라 프랑스 앵수미즈(LFI) 소속 프랑수아 뤼팽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축구팀 유니폼 셔츠를 입고 의회 연설에 나섰다. 그가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연단에 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그는 프로축구 선수들 이적료에 세금을 도입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연설의 내용에 어울리는 옷을 선택해 입은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의회는 ‘관습을 어겼다’는 이유를 들어 뤼팽 의원에게 벌금 1300유로(약 180만원)를 청구했다.
뤼팽 의원이 촉발한 복장 논란은 ‘의회 복장 규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규정에 따라 프랑스 하원 남성 의원들은 재킷과 넥타이를 필수로 착용해야 한다. 운동복이나 정치·광고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특정 직업 관련 유니폼, 종교를 상징하는 옷 등은 착용이 금지됐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