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잔반’(殘飯·먹고 남은 음식)을 국가의 새로운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홍수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매일 나오는 막대한 음식물쓰레기의 양을 언급하며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프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그릇에 담긴 음식과 쌀 한 톨 한 톨마다 농부의 고생이 배어 있다”며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엄중한 사태를 맞아 우리는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어 “잔반을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근검절약은 명예롭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교육을 강화하라”며 “이를 위해 관련 법제화와 감독 강화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중국과학원과 세계자연기금(WWF)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한 해에 낭비되는 음식물은 1800만t으로 추정된다. 이는 5000만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한국 전체 인구의 1년치 음식이 매년 중국에서 버려지는 셈이다.
시 주석이 갑자기 잔반을 없애라고 지시한 배경에는 최근 중국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점증하는 압박과 국내의 여러 악재가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중국에서 몇 주 동안 지속된 홍수와 메뚜기떼의 창궐로 작물이 큰 피해를 입어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높아진 농수산물 가격이 더 상승했다”며 “특히 미국, 유럽 등과의 고조된 갈등은 중국의 식량안보에 위기감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소비되는 식량 중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 지시에 따라 중국에서는 접시를 깨끗이 비우자는 의미의 ‘광판운동’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이 운동은 2013년 시작된 시민 주도의 잔반 줄이기 캠페인이지만 시 주석이 잔반 축소를 언급하며 관제 정책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후베이성 우한시 요식산업협회는 잔반 줄이기 운동의 일환으로 ‘N-1 주문’ 모델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우한시에서는 식당을 방문하면 총인원에서 1인분을 뺀 만큼만 주문이 가능하다. 4인 가족이 식당에 가면 3인분까지만 주문이 가능하다.
또 우한시 식당은 손님에게 의무적으로 반(半)인분 이하의 메뉴를 우선 추천해야 하고 잔반이 남을 경우 포장할 수 있도록 포장용 박스를 상시 구비해야 한다. 우한시에 이어 셴닝시와 신양시도 이 모델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디언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음식을 주문하는 게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중국사회에서 이런 정책이 성공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정책에 반발하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시 주석의 잔반 지침을 보도한 인민일보 인터넷판 기사에는 “공직자들부터 N-1 모델로 주문해봐라” “언제까지고 인민들에게서 뭔가를 뺏어갈 생각은 접어라” 등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