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군산공립중학교 3학년 학생은 15살 나이로 혹한기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만주의 관동군에 배치된다. 충남 공주 장기국민학교 6학년 학생은 12살 앳된 나이에 항공유로 쓰기 위한 군용수피를 채집하는 데 10차례나 동원됐다. 일제는 이 학생을 ‘순종적이고 풀 베는 데 숙련돼 다른 사람보다 배 이상의 수량을 공출할 수 있다’ ‘낫질의 달인’이라고 기록했다.
국가기록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동북아역사재단은 13일 그동안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아동과 여성 강제동원 관련 기록과 이를 정당화하고 선동하기 위한 신문기사, 문헌 등을 최초로 공개했다. 3개 기관은 앞으로 아동과 여성 강제동원 관련 기록 분석과 연구, DB구축 사업을 공동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조선총독부로부터 넘겨받아 소장 중인 기록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국내 노역 현장에 강제동원한 ‘학도 동원’ 내용이 담긴 학적부, 여성 동원을 보여주는 간호부 관련 명부, 유수명부와 공탁서, 병적전시명부 등이다. 그동안 학생과 간호부 동원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실제 인물과 동원 내용이 기재된 명부가 공개된 것은 보기 드문 사례다. 이달 말까지 일반인도 예약하면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일제는 이미 1938년부터 학교별로 ‘근로보국대’를 결성해 학생들의 근로봉사를 강제했다. 당초 10일 정도 동원했으나 전쟁이 심화되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기간을 1년까지 늘려 학생들의 노동력을 강제 이용했는데 학적부는 이 같은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1944년 3월 18일)과 ‘학교별 학도동원기준’(1944년 4월 28일)은 ‘근로는 곧 교육’을 표방하는 총독부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년 수시동원을 강제한 지침이다.
특히 학적부(중학생)에 근로보국대 동원 내용이 수록돼 있는 학생이 졸업 후 관동군과 남방군 등 일선 파견부대 군인·군속으로 배치된 사실이 유수명부와 공탁서로 확인됐다. 이는 총독부가 조선 학생들을 노동력과 병력의 원천으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사례다. 국가기록원 이영도 연구관은 “중학교 때 혹한기 훈련을 받은 학생이 졸업 후 만주 관동군에 배치됐다는 사실을 학적부와 유수명부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제가 청계천과 남대문 지하에 대규모 방공호를 만들어 경성을 전쟁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1939년 6월 경성에서 개최된 조선방공전람회 기록에는 청계천 아래 대규모 지하시설을 구축해 방공호로 이용하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공개한 총독부 자료 가운데 ‘소년공’ 또는 ‘산업전사’라는 이름의 아동 노무동원 관련 문헌과 신문 자료가 전시됐다. 여성 동원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간호부 동원에 관한 신문 자료가 공개됐다. 일제는 여성 간호부를 ‘백의의 천사’로 선전하면서 이들을 침략전쟁의 최일선으로 내몰았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