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은 정서적으로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정신적 학대(emotional abuse)의 일종으로 주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상황을 조작해 상대를 계속 지적하고 부정을 심어주어 정신을 황폐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을 이용해 상대의 인생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의 모티브가 된 영화 ‘가스등’(1944)에서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한 부인은 멀쩡한 자신을 정신병자로 의심합니다. 부인의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져서 결국 남편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어떠한 생활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조작이었고 자신의 인생을 이용하려 했던 남편의 자작극이었다는 진실을 마주하자, 부인은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짓누르던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진실을 마주하는 게 가스라이팅을 멈출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부모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녀에게 행한 말과 행동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크고 작은 가스라이팅이 너무나 흔하게 이뤄지는데도 부모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혹은 자녀를 위한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이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면 다음세대가 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아파하고 방황하는지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자녀의 인생을 병들게 하는 가스라이팅은 무엇일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이 시대의 부모가 자녀에게 범하는 대표적 가스라이팅 6가지 중, 세 번째를 제시합니다. 바로 ‘폭력의 가스라이팅’입니다.
최근 부모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아동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녀 징계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습니다. 실제로 많은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 부모들이 자신의 학대행위가 정당한 훈육이었으며, 사랑의 매였다고 주장하며 징계권 조항으로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개정법률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60년 만에 부모가 자녀를 상대로 훈육을 위해 체벌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이 법적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는 체벌과 폭력을 구별하지 못한 채 자녀에게 폭력의 가스라이팅을 행사하는 가스라이터 부모들에게 던지는 이 시대의 강한 경고 메시지일 것입니다.
폭력의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뉴스에 나올 법한 살인까지 연결되는 학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체벌과 폭력을 정확하게 구별할 능력이 없는 부모가,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자녀를 힘으로 제압하려 하고 복종하게 하는 게 바로 폭력의 가스라이팅입니다.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게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자녀의 쓴 뿌리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체벌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체벌은 반드시 부모가 자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든다는 것을 자녀가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체벌에 대해 그런 신뢰와 믿음을 갖도록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체벌은 자녀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부모는 자신이 가장 흥분하고, 실망과 화로 감정이 불안정한 순간에 자녀에게 매를 듭니다. 그렇게 드는 매는 자녀의 쓴 뿌리를 잘라내는 게 아니라 자녀의 마음에 부모와 세상을 향한 두려움 공포 분노 수치 슬픔을 키워주는 가스라이팅입니다.
이런 폭력의 가스라이팅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뇌는 폭력적인 세상에 더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발달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도 과도하게 경계하게 되고 쉽게 두려움을 느끼며 과도한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과한 자기방어를 하게 됩니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결과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때로는 주인의 감정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어른보다 더 예민한 영(spirit)을 지닌 자녀들은 어떻겠습니까. 자녀는 부모의 심장 소리만 들어도 부모의 영혼 상태와 마음을 정확히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자녀에게 분노와 실망이 담긴 체벌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입니다. 그 폭력은 자녀의 인생을 좋은 길로 인도해줄 수 없습니다.(잠 16:29)
지금껏 내가 자녀에게 매를 든 것이 체벌이었는지 폭력이었는지 냉정히 돌아보십시오. 체벌과 폭력을 정확하게 구별할 능력이 없는 부모에게는 매를 들 수 있는 자격 또한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해독하기 힘든 강력한 가스라이팅이며 범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폭력이 아닌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는(엡 6:4) 믿음의 부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