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린 뉴딜’의 일환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녹색금융 정책을 꺼내 들었다. 앞으로 금융권도 ‘그린 스완’(Green Swan·예기치 못한 기후변화 위기)에 대비하는 글로벌 추세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골자지만 과거 이명박(MB)정부의 녹색금융과 기시감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업계에선 “어쨌든 환경 관련 투자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는 반응이다.
13일 금융위원회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개최했다. 금융위원회, 환경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유관기관과 금융권, 유엔 환경계획금융이니셔티브(UNEP FI), 녹색기후기금(GCF) 등 자문단이 참석했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이어 연일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걸 보면 기후변화 대응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힘을 합쳐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주도로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권의 녹색산업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뜻이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 리스크 관련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하고 녹색금융 관련 국제 네트워크에 가입하기로 했다.
특히 손 부위원장은 “무엇이 녹색산업인지 명확히 가려내 ‘그린 워싱(Green Washing)’을 방지하고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린 워싱이란 친환경 투자·경영과 거리가 먼 기업들이 금융지원을 받기 위해 마치 녹색산업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MB정부 당시 실시됐던 녹색금융 정책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2009년 정부는 금융위와 금감원, 전국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등이 참여하는 ‘녹색금융협의회’를 출범시켰다. 민간 금융권은 정부의 친환경 기조에 부합하는 금융상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그러나 당시 정책금융기관과 금융권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친환경 사업을 한다고 보기 어려운 업체에까지 금융지원을 해준다는 지적이 국정감사 등에서 제기됐다. 또 박근혜정부가 취임 후 ‘통일금융’을 띄우자 녹색금융은 더 유명무실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2009년 만들어졌던 사이트 ‘녹색금융포털’에 소개된 금융상품은 현재 거의 판매되고 있지 않거나 부진하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당시 녹색금융은 세계적인 흐름이 아니었고, 막대한 예산에 비해 구체적인 방향성이 미비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녹색금융 정책은 혼선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올 연말까지 녹색금융 분류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과거 실효성이 없었던 녹색금융 정책에 또 투자하게 돼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09년부터 연속성 있게 추진됐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이제 와 다시 투자하라고 할 것 같아 당황스럽다”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