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내 나이 딱 60살이 되던 해, 뭔가 허전함이 밀려왔다. 난 그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성경 필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을 때만 해도 이 나이쯤 되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던 나이였다. 지난 삶을 되돌아봤다. 두 팔이 멀쩡했던 30년의 삶보다 두 팔 없이 살아온 30년의 삶이 더 즐거운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2008년 협심증으로 쓰러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즐거운 추억들로 가득한 삶이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이 모든 건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답이 안 나왔다.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었다. 고민하던 내게 그동안 틈틈이 읽던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1월 30일. 성경 필사 작업에 착수했다. 가로 25cm, 세로 46cm의 화선지 안에 창세기 말씀부터 한 자씩 적어 내려갔다. 일과 시간의 반을 성경 필사에 매달렸다. 마음가짐도 바로 잡았다. 가장 먼저 아내가 생각났다. 내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운 아내를 난 ‘아줌마’라고만 불렀다. 내겐 고마운 천사 같은 존재인데 아니다 싶었다. 그때부터 ‘사모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난 노안이 와 돋보기를 사용해 성경책을 보던 때라 작은 글씨로 써 내려가는 필사 작업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절단 환자들에게 항상 찾아오는 환상통도 있었다. 손가락과 손목 등 절단돼 이미 없는 부위가 아픔을 느끼는 환상통이 찾아올 때면 진통제를 먹어도 별 효과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아픔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한 글자씩 성경 구절을 마음에 되새기며 적어 내려갔다.
하루는 성경 필사를 위해 돋보기를 끼고 성경책을 보려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돋보기를 벗으니 잘 보였다. 이런 신기한 경험은 성경 필사를 한 뒤로 몇 가지 더 있다. 나는 원래 산에 올라가도 땀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건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진통제 없이는 못 버텼던 환상통도 점점 잦아지더니 이젠 아주 가끔 약을 먹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성경 속 하나님께서 아픈 자를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셨다더니 그 기적을 체험하는 듯했다.
성경 필사를 시작할 땐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루 4~5시간씩 매달리다 보니 3년 6개월만인 2018년 여름 드디어 신·구약 성경 필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25m 두루마리 화선지 115개, 길이만 2875m다.
성경 필사를 하며 얻은 것이 또 있다면 내 글씨체 ‘석창우 체’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스승 효봉 여태명 교수의 ‘민체’처럼 아직은 부족하지만 나도 내 고유의 서체를 갖게 됐다. 이 서체로 지금도 틈틈이 다시 또 성경 필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성경 필사는 그저 내 필생의 과업이라 생각하며 쉼 없이 계속할 생각이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