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 가야산, 세상 시름 뒤로 하고 흰 구름 속으로…

입력 2020-08-12 20:39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에 걸쳐 있는 가야산 최고봉 칠불봉에서 내려다본 모습. 가운데 기기묘묘한 바위가 어우러진 만물상 코스가 길게 뻗어 있고 그 너머로 남산제일봉이 이어진다.

택리지를 쓴 실학자 이중환은 이 산에 대해 뾰족한 바윗돌이 불꽃같이 이어졌고 바위 모양새가 깎아지른 듯해서 사람이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때로 봉우리 위에서 풍악 소리나 말 발소리가 들린다고 썼다. 경북 성주와 경남 합천에 걸쳐있는 가야산이다. 대가야의 시조 설화가 서려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해동의 십승지 또는 조선 8경의 하나로 이름이 높은 산이다. 산의 주능선은 칠불봉(1433m)을 중심으로 동·서·남으로 크게 뻗어나며 병풍을 두른 듯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드러낸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에서 출발한다. 상가 쪽으로 올라가 곧장 시멘트 포장길을 따른다. 5분쯤 가면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 나온다. 나무와 꽃 등 총 13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식물원을 지나면 탐방지원센터가 눈에 보인다.

만물상 오름길이 있지만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용기골로 향한다. ‘용이 일어난 골짜기’인 용기골은 이름만큼이나 골이 길고 깊다. 길은 계곡을 건너다니며 편안한 곳으로 나 있었다. 중간중간 데크 계단이 있어 걷기가 수월하다. 잇따른 장마로 우렁차게 쏟아지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가야산 상왕봉에서 본 칠불봉 모습.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면 서성재(1140m)에 닿는다. 구름을 모자처럼 쓴 정상 칠불봉이 머리 위에 있다. 가파른 철 계단과 씨름하며 40분가량이면 칠불봉 아래 이정표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꺾어 칠불봉을 밟는다. 칠불봉 능선을 보면 울퉁불퉁한 암봉들이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다. 푸른 능선을 따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바위들의 향연이 아스라이 이어진다. 한국의 10대 명산에 걸맞게 수려하다.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솔나리의 집단 자생지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아덤(1220m)을 시작으로 공룡의 등지느러미처럼 톱날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만물상 능선이 이어진다. 그 너머로 매화산 남산제일봉이 자리한다. 상아덤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상아덤은 달에 사는 미인의 이름인 상아와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쳐진 단어로,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 신 이비가지가 노닐던 전설을 담고 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운 최치원이 저술한 ‘석이정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는 하늘의 신 ‘이비가지’와 상아덤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이후 어여쁜 옥동자를 낳게 되는데 첫째는 아버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어 ‘뇌질주의’라 이름 지었다. 둘째는 어머니를 닮아 얼굴이 달과 같이 갸름하고 흰 편이어서 ‘뇌질청여’라 불렀다. 이 두 형제는 자라서 형은 대가야(고령)의 첫 임금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김해)의 첫 임금인 수로왕이 됐다.

칠불봉에서 내려와 250m가량 서쪽으로 떨어진 상왕봉(1430m)으로 향했다. 봉우리가 소머리를 닮아 우두봉으로도 불린다. 널찍한 암반에 ‘우비정(牛鼻井)’이 있다. 소 콧구멍 샘이다. 고여 있는 물에 개구리를 볼 수 있다. 안개와 구름이 일렁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바위산의 황홀한 비경이 펼쳐진다.

한때 가야산 최고봉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2004년 2월 국토지리정보원이 실측한 결과 칠불봉이 상왕봉보다 약 3m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각종 가야산 지도에는 여전히 상왕봉이 주봉 행세를 한다. 높이로만 꼭 주봉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칠불봉과 우두봉은 모양새가 전혀 다르다. 칠불봉이 뾰족 솟구친 전형적인 암봉인 반면 동서로 길게 암릉을 이룬 우두봉은 밑동의 길이가 500m가 넘는 긴 암괴의 중앙부에 솟아 있다. 두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도 가야산의 압권이다. 지리산에서 백운산을 거쳐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뿐 아니라 동으로 팔공산, 북으로 독용산을 비롯해 경남과 전남·북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농산정이 아늑하게 자리한 홍류동 계곡.

상왕봉에서 내려오면 해인사 방향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다. 해인사에 다다르면 홍류동 계곡을 따라 가야산 소리길이 이어진다. 홍류동은 봄에는 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계곡을 물들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걷는 길이다.

계곡에 농산정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가야산에 들어와 수도한 곳이다. ‘이미 흐르는 물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만 겹 산으로 다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는 시가 있다. 농산정이 계곡 가까이 있어 여름이면 물소리에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 여행메모
백운동 역사신화테마관·야생화식물원
대장경테마파크에서 홍류동 계곡 탐방

승용차로 수도권에서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나들목에서 빠지는 게 가깝다. 탐방지원센터 주변에 규모가 제법 큰 무료주차장이 있다. 가까운 곳에 가야호텔도 있다.

열린 관광지인 합천 대장경테마파크.

초입에 ‘가야산 역사신화테마관’과 야생화 식물원이 있다. 백운동에서 칠불봉까지 4.3㎞를 오르는 데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걸음이 빠른 등산객이면 1시간40분가량이면 닿을 수 있다. 가야산을 제외하고 홍류동계곡 소리길만 탐방한다면 합천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하면 된다. 인근 주차 공간이 좋아 편리하다.

성주읍 경산리 이천변에 ‘성밖숲’이 있다. 초록 이끼를 입은 오래된 왕버들과 보랏빛 맥문동이 어우러져 시원한 풍경을 선사한다. 더운 여름철이면 성주에서 물놀이 피서지로 포천(布川)계곡이 꼽힌다.







성주·합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