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타는 K배터리 동맹, “실현성 없는데…” 물거품 우려 목소리

입력 2020-08-17 18:46
그래픽=정보람 oboram88@kukinews.com

최근 정부와 재계 총수들의 행보로 ‘K배터리 동맹’에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물론 법조계와 학계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설픈 동맹은 글로벌 시장에서 담합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거니와 특정 산업은 ‘국가 대항전’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계 총수들의 행보로 ‘K배터리 동맹’이 업계 화두로 급부상했다. 배터리 동맹은 현대차를 포함한 삼성SDI와 LG화학, SK이노베이션 배터리 3사가 국가 배터리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가운데 배터리 산업이 ‘제2의 반도체’로 불릴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약 220만대가 판매된 전기차는 2025년이면 1200만대 이상 판매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배터리 시장도 약 180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국가 대항전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국내 업체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업체 간 협력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반론이 우세하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고위 관계자는 “한국 산업을 이끄는 전자 조선 건설 등의 기업들을 살펴보면 업종 내 경쟁이 치열하다는 특징이 있다. 경쟁 과정에서 기술을 보완하고 경쟁력을 제고 해왔다”면서 “해외 수주전에서도 엎치락뒤치락하며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경쟁업체 간 동맹을 맺는다면 시너지 효과를 내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기업들은 바보가 아니다. 수조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만든 창작물을 다른 기업과 공유하기를 원치 않는다”며 “만약 강제로 이것을 공유하게 만든다면 단과는 숨기고 낙과만 내놓으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도 배터리 업체 간 협력은 법률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배터리 동맹은 국내외적으로 배터리 업체 간 담합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며 “한국은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지침에 의하면 행정지도에 따른 부당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보고 다만 법령에 정함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됐다”고 설명했다. 또 “단순 인사 목적 만남이 아닌 특정 형태의 동맹을 정부가 주도해 한국 배터리 경쟁사 간 모두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유의미한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이는 사실상의 행정지도에 불과해 법적 면책 사유가 되지는 못할 위험성이 크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법률에 정할 경우 행정지도와 관련된 담합의 예외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을 기록하는 3사간에 동맹이 구체화될 경우 협의 내용에 따라 유럽(EU)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반독점 이슈를 피하기 어렵게 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도 “셔먼법은 산업 전 분야에서 기업들이 연합(독점)하면서 발생하는 생산량 조정과 품질 저하, 내구연한의 조정 등 광의적 의미에서 철저히 전체 소비자 다수를 위해 제정된 법”이라며 “미국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업체가 연합을 하면 차후 큰 문제로 비화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이번 정부는 경제를 국가 단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맹이라는 말 자체가 기업을 국가 대표팀처럼 생각하는 것인데 이런 게 작동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기업들은 각자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경쟁력을 갖는다. 서로 다른 기술을 연구해 성공하는 것이다. 정부가 동맹을 추구하려 한다면 주제넘은 짓”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 간의 동맹은 현실성이 없고, 어설프게 접근할 경우 담합행위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업계와 법조계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 행보는 배터리 업체 간 동맹이 아닌 오히려 수주 경쟁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우수한 제품을 공급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동안 거래가 없었던 삼성을 방문하면서 기존 공급업체인 LG와 SK를 긴장하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배터리 업체 간 협력은 현실성이 없지만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는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 형태의 사업구조 확보가 전기차 경쟁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기업과 완성차 간 합작법인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 도요타와 파나소닉도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현재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중이다. 독일 폭스바겐도 지난해 6월 스웨덴의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합작으로 연 생산량 16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전기차 생산 초기에는 관련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로 합작법인 설립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안정적인 조달이 우선시되면서 국내외 배터리 기업이 기술력을 유지하는 합작법인의 설립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 사업이 강도 높게 추진될 예정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GM(제너럴 모터스)은 향후 4년간 쉐보레와 캐딜락 등 브랜드에서 20여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방침이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도 지난해 11월 향후 5년간 600억 유로(약 78조원)을 투자해 순수 전기차 75종, 하이브리드 60종을 개발 생산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 모기업) 역시 전기차 브랜드 ‘EQ’ 모델 개발에 100억 유로(약 13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이처럼 완성차 업계에서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필수가 됐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 전문가는 “배터리 동맹은 피상적 이야기”라며 “다만 안정적 배터리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한 완성차 업계와 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중권 쿠키뉴스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