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장기로…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되나

입력 2020-08-13 19:39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인공장기를 비롯해 생명 연장을 위한 최첨단 기술의 현주소와 미래를 예측한다. 기술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기술에 수반되는 윤리적, 종교적, 사회적 의문들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본다. 저자는 “언제나 그렇듯 기술은 점점 빠른 속도로 철학적인 질문을 앞질러간다”며 기술 변화 속도에 맞춰 다양한 관점에서의 논의가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최초의 인공심장 특허는 1963년 폴 윈첼이 획득했다. 재밌는 점은 그가 의사나 공학자가 아니라 배우, 코미디언, 성우이면서 발명가였다는 점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스머프’에서 가가멜, ‘곰돌이 푸’에서 티거 목소리를 연기했다. 기도가 이물질로 인해 폐쇄되었을 때 처치법인 ‘하임리히법’으로 유명한 헨리 하임리히 박사의 도움으로 인공심장을 만들어 특허를 낸 윈첼은 인공심장을 연구하던 유타대학교에 특허를 넘겼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83년 로버트 자빅이 개발한 인공심장이 인간에게 최초로 이식됐다. 이식 받은 환자는 112일을 생존한 후 숨졌다. 다소 도발적인 국내 제목과 달리 이 책의 원제는 ‘인간을 넘어 : 첨단 과학은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는가(Beyond Human : How Cutting-Edge Science Is Extending Our Lives)’이다.

인공심장처럼 연원이 오래된 인공장기를 비롯해 생명 연장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향후 몇 십 년 내에 피부나 인공망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체부위를 인공장기로 대체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단언한다.

미래 예측도 곁들인다. 가령 심장은 프로그래밍된 수백만 개의 나노로봇이 심장을 대신하는 것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로 언급된다. 나노로봇이 혈관을 돌아다니며 적혈구를 산소화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나노로봇이 뇌 신경세포와 외부 컴퓨터 사이 연결망을 구축해 정보를 교환하고, 사망 전 사람의 마음과 뇌를 디지털화해 로봇 등으로 복제하는 ‘마인드 업로딩’도 소개한다.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같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하지만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 레이 커즈와일, 뇌보존재단 공동설립자 케네스 헤이워스 같은 미래학자는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책의 가치는 첨단 기술의 현주소나 예측보다 기술에 뒤따르는 윤리적, 철학적, 사회적 고민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앞서 든 인공심장의 경우를 먼저 보자. 인공심장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언제 누가 꺼야 하나’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책에는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뇌졸중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경우를 상정한다. 이 경우 인공호흡기를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공심장은 계속 뛴다. 문제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던 환자는 기계를 껐을 때 바로 사망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인공심장은 끄면 “즉각적인 죽음”에 이른다는 점이다. 인공심장을 끄는 것을 살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인드 업로딩과 관련해 가정된 상황도 난감하다. 유언장이 없는 50세 여성이 뇌졸중을 일으켜 죽음을 앞뒀을 때 가족의 의견이 갈린다. 남편은 평화로운 죽음을 원하지만 여성의 부모는 마인드 업로딩을 고집한다. 법정 다툼 끝에 마인드 업로딩 결정이 내려졌다. 그 결과 남편 곁에 남은 건 장애 상태인 아내의 마음을 가진 로봇뿐이다. 해당 로봇을 인격체로 상정할 것인가, 로봇이 기능 이상을 일으킨다면 스위치를 끌 수 있는가 같은 질문도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치료용으로 개발된 기술이 정상인의 기능 강화를 위해 쓰이는 경우는 또 어떤가.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해 뇌에 전기자극을 주는 심부 뇌자극, 약물이 뇌기능을 향상시킨다면 평상시에도 이를 허용해야 할까 같은 문제들 말이다. 이 경우 ‘가타카’ ‘엘리시움’ 같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처럼 “유전적 및 기술적 카스트 제도”가 보편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신체 일부가 인공물이나 융합기술로 대체되는 경우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라는 질문도 던진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는 자신이 ‘생명보수주의자’라고 명명한 학자들의 주장을 하나씩 논파하며 첨단 기술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기술 불평등 우려에 대해 저자는 “처음에는 부자들에게 보급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사람이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독자에 따라 책이 먼 미래에 대한 앞선 걱정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 경우 저자의 다음 문장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손으로 이런 발전을 이룩한 우리 세대조차 이제껏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문제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아인슈타인이 말했듯 생각이 애초에 문제를 일으켰던 수준에 머물러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해보자. 이런 사회가 올바로 작동하려면 이미 시작된 생물학적, 기술적 혁명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는 문화적 혁명이 필요할 것이다.”

첨단 의료 기술에 대한 지식과 그에 수반되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지만 첫 출간된 4년 전과 지금은 또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동시에 남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