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절창(絶唱)

입력 2020-08-13 19:42

들판은 맛있는 책이다
만권 사서로 펼쳐놓은 황금의 책
태양의 바느질로 모두 익었다
잘 익은 이야기들의 달빛 받아 환하다

대지의 어머니가 빛과 어둠으로 빚어놓은 진본眞本
읽고 또 읽어보아도 배가 고프다
당연조차 놓치고 허와 기를 읽었나 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가본假本 같은 건 지을 줄 모르는

진실들로 고개 숙인 저 들판을 나는 왜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고 싶은가
궁창穹蒼 아래로 절창絶唱이신 어머니!

뿌리를 움켜쥐고 버틴 저 삶들 모두
어머니가 주시는 밥이 분명한 것은
내 배꼽 자리와 탯줄로 이어진 샘,
어머니의 바다가 있어서일까

김복태 ‘백년의 토끼와 흰말과 고양이’ 중

시인에게 들판은 잘 무르익은 많은 책이 펼쳐진 것처럼 보인다. 또 어머니와 아버지이며 배꼽 자리의 탯줄로 시인 자신과도 이어져 있기도 하다. 지혜를 주기도, 밥을 주기도 하는 자연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과도 연결돼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