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처럼 백신이 없습니다. 앞으로 환경 문제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구조적 위협이 될 것입니다”
1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사들이 모인 친환경 투자 단체 ‘세레스(Ceres)’는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에게 이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세레스 관계자는 “코로나19는 인간이 불가항력적인 재해에 놓였을 때 시장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보여줬다”며 “기후변화가 현실화되면 비슷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하며 미 금융 당국이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과 투자자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겪은 이후 전염병과 재해, 환경오염 등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면서 실물경제 악화와 경제활동 봉쇄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국내 증시도 코스피가 3월 19일 1400대 초반까지 하락하며 공포에 휩싸인 바 있다. 사라 블룸 래스킨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건강과 기후 등 일상생활에 가해지는 충격에 특별히 취약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에 이어 금융시장의 관심은 환경문제로 쏠리고 있다. 기후변화 역시 단기적인 해결책이 없으며, 금융시장에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금융권도 환경보호 가치를 중시하는 ESG 관련 투자와 경영이 활발해지고 있다.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총 33조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240곳의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로 구성된 기후변화 대응 투자자 단체 ‘IIGCC(The Institutional Investors Group on Climate Change)’는 최근 탄소중립을 위한 투자 방침을 정했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재생에너지, 저탄소 기업,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에 대한 투자는 늘리고,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기업의 비중은 줄이는 식이다. 스테파니 파이퍼 IIGCC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들도 환경을 보호하려는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설명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30년까지 ESG 관련 펀드 규모를 1조2000억 달러 가량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구 온난화는 이전의 위기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시장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환경 친화적 기업들이 각광받고 있다. 일례로 미국 최대 석유업체 엑슨모빌 주가는 연초 대비 37% 하락했지만, 전기차 대표주자 테슬라는 같은 기간 216% 폭등했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 “지속 가능한 경제에 기여하는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재생 에너지 관련 기업들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며 “테슬라 및 태양광·풍력 에너지 관련 업체들이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축산 업종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미 최대 육류가공회사 타이슨푸드는 연초 보다 주가가 28% 하락했다. 반면 대체육 제조 기업으로 뉴욕 증시에서 주목받고 있는 비욘드미트는 68% 가량 올랐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따라 최근 국내 금융권도 ESG 투자 비중을 적극 늘리는 추세다. KB금융그룹은 이달 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7년 대비 25% 줄이는 한편 ESG 상품·대출·투자를 50조원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추진할 때는 ‘적도원칙’에 참여하기로 했다. 적도원칙이란 대형 개발사업이 환경파괴와 인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을 경우 대출을 하지 않겠다는 글로벌 금융사들의 자발적 행동협약이다.
신한금융그룹은 2030년까지 녹색산업에 20조원을 투자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2년 대비 20% 감축하기로 했다. 이른바 ‘저탄소 금융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기업 및 프로젝트사업에 금융 지원을 강화하고, ESG 펀드와 환경채권 발행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부터 환경산업 담당 애널리스트를 따로 지정해 환경보호 관련 투자 강화에 나섰다.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올해 주식시장의 무게중심은 환경친화적 산업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라며 “기후변화 대응 산업에는 정책 지원이 강화되는 한편 전기차, 2차전지, 신재생 산업 등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9500억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고, SK증권은 2000억원 이상의 ESG 채권 발행을 주관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ESG 채권펀드를 출시해 운용 중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