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은 애원하고 있어요. 애인들은 모두 홀로 있죠. 어머니들은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 아들들을 집으로 다시 보내달라고요. 당신들은 그들을 멀리 끌고 갔죠. 배와 비행기에 실어서, 헛되게 죽음을 직면하는 무의미한 전쟁터로./ 배를 돌려요. 무기를 내려놓아요. 당신들은 죽어간 모든 군인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던 것을 볼 수 없나요./ 아들들을 집으로 다시 보내주세요.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해주세요.”
미국의 반전 가요 ‘아들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Bring the Boys Home)’의 가사 일부다. 미국이 베트남전의 늪에 깊게 빠졌던 1971년 나왔다. 13주 동안 빌보드차트 100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49년 전엔 여군이 극히 드물어 군인은 아들과 동의어였다. 미국 정부가 추산한 베트남전 사망 미군 숫자는 5만8220명. 이 가운데 미국 여군 사망자는 8명이었다. 역사는 그 속에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아들들을 집으로”라는 말도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해 미군이 주둔한 동맹국에 과도한 방위비를 요구하고 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미군을 감축하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트럼프가 자신의 해외 주둔 미군 철수 정책을 합리화할 때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아들들을 집으로”다. 반전 구호였던 “아들들을 집으로”가 지금은 동맹국의 돈을 뜯어 가는 데 쓰이고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트럼프는 이미 2016년 대선에서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해외 주둔 미군은 20만명 규모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오히려 조금 늘어났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밀린 숙제를 부랴부랴 하는 느낌을 준다. 트럼프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올해 2월 실업률은 3.5%였다. 1969년 이후 50년 만의 최저 수준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는 동맹국의 지갑을 털어서라도 돈을 가져오는 모습을 미국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놓고 한국 내 여론은 갈라져 있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이 조금이나마 빠질 경우 나라가 무너질 것 같은 걱정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주한미군은 나가라고 큰소리를 치는 형국이다. AP통신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주한미군 주둔을 지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의 당선만을 참고 기다리면 될까. 그러자니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러시아) 놈 속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나고 되놈(중국) 되(다시) 나온다”는 작자 미상의 해방정국 노래가 떠오른다. 1970년대 말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했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바이든도 안심할 수는 없다.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논쟁하기 이전에 따져 봐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바로 우리 군의 자주국방 능력과 의지다. 우리 군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주한미군이 합리적 분담금 수준에서 덤으로 있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떠난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탈북자의 ‘헤엄 월북’ 사건은 우리 군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깊게 만든다. 지난 5월엔 중국 밀입국자들이 탄 소형 모터보트가 충남 태안에 오는 것도 눈 뜨고 놓쳤다.
한반도에 평화의 물결이 흘러넘쳐도 군만은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트럼프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군 당국의 해이해진 상태를 먼저 질타해야 한다. 우리 군 수뇌부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했던 전직 군 장성들에게 일갈했던 말을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