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선지자를 먼저 보내신 이유

입력 2020-08-12 00:01

구약성경 사사기 6장에는 하나의 사건과 하나의 해석이 기록돼 있습니다.

사건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으로부터 7년이나 압제와 약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영웅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기드온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상한 일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보내기에 앞서 선지자를 먼저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선지자가 대체 뭘 한단 말인가” “지금은 영웅이 필요하다”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먼저 보내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이 겪는 사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지자는 “이 고통은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뒤 가나안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지만, 백성들이 더이상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의 압제에 떨어진 이유는 영웅이 없거나 무기가 부실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는 눈앞의 사건이 가진 의미를 해석해 줬습니다.

역사를 읽을 때는 두 가지 요소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는 사건(fact)이요, 다른 하나는 사건의 의미(meaning)입니다. 19세기 역사가인 랑케는 “역사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에 있다”고 하면서 객관적 사건을 배열하는 역사 기술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사건만 갖고 역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을 해석한 의미가 첨가돼야 합니다.

요즘 여러 신문을 보다 보면 종종 철자까지 똑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이런 기사만 볼 거라면 굳이 다양한 신문을 읽을 필요가 없겠죠. 그러나 우리는 이 신문들에 실린 사설이나 평론을 통해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신문을 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입니다. 여기서 사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과거 일본은 우리 민족이 뒤졌기 때문에 근대화를 돕는다고 주장하면서, 식민 지배가 유익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소위 식민사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으로서 얼마든지 스스로 우리 미래를 개척할 수 있으니 일본은 물러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게 민족사관입니다.

교회사에도 사관의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 선교사의 관점으로 한국교회사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한국인이 어떻게 복음을 수용한 뒤 고난의 근대사에서 소금과 빛이 되고자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한국인의 교회사’를 기술하려고 노력합니다.

환자가 아픈 것은 사건이고 의사가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해석입니다. 그에 따라 치료 방법과 처방이 정해집니다. 아픈 원인을 밝히지 않고, 즉 해석하지 않고 진통제만 처방하면 결국 병은 도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장 구원자를 보내면 미디안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후에 다시 적에게 떨어질 것입니다. 중요한 건 원인을 알도록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적으로부터 철저하게 방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해석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한 여러 현안에 대한 신앙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선지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국교회가 선지자의 역할을 잘 감당했으면 합니다.

김운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