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에는 이인자가 없는 것 같다. 정권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역대 정권을 생각해 보면 독특한 현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권노갑 고문이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이광재 안희정 보좌관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만사형통’ 이상득 부의장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최순실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었다.
문재인 정권에도 이인자로 불릴 만한 인물들은 있었다. 2017년 대선 기간에는 양정철 전 비서관이 그런 역할을 했다. 많은 인재가 양 전 비서관을 통해 문 대통령을 만났고, 문재인 캠프의 여러 갈등이 양 전 비서관을 통해 정리됐다. 집권 초기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시간이었다. 여권 인사들의 고백처럼 ‘준비 없이 출범한 정부’의 여러 혼선을 정리했다. 두 사람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대통령 곁을 떠났거나 역할이 축소됐다. 문 대통령 신임이 컸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사건에 발목이 잡혔다. 문재인정부 첫 총리였던 이낙연 의원에게 이인자 타이틀을 붙이기도 모호하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임명됐을 때 많은 사람이 ‘그립이 강한 실세의 귀환’을 반겼다. 그러나 노 실장이 그동안 보여준 역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상황은 긍정적인데, ‘조정의 기능’마저 함께 사라졌다는 점이 문제였다. 역대 정권의 이인자들은 대부분 교도소에 갔다. 그래도 이인자의 역할이 있었다. 갈등 조정 역할을 했다.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 이인자는 대통령을 대신해 갈등을 정리했다. 때로는 욕을 먹었고, 마지막에는 교도소에 갔다. 책임 소재도 분명했다. 잘되면 대통령 덕분이고, 잘못되면 이인자 탓이었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문재인정부의 조정 능력이나 갈등 해결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싸우고, 부장검사와 검사장이 몸싸움을 벌여도 시시비비를 따져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없다. 보이는 것은 비난전뿐이다.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지금쯤 추미애 장관을 정리하든지, 윤석열 총장을 정리했어야 한다. 감사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보내면 된다. 이도 저도 아닌 기이한 상황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의 권력을 익명의 특정 집단이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여권 인사는 “일부 실세가 아니라 집단 지성이 움직이는 정권”이라고 했다. 이인자가 사라진 자리를 과격한 주장을 앞세우는 친문과 같은 특정 집단이 대체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과한 것일까. 장관도 청와대 수석도 여당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문재인정부의 상황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이들이 권력을 누리지만, 권력을 누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한 채 다들 대통령 뒤에 숨어 있고, 누구도 그런 상황을 정리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이 세 가지라고 말한다. 소유권을 분명히 하거나, 규제를 엄격히 하거나, 구성원 간 자율적인 합의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율적인 질서를 만들거나 규제를 엄격히 하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지난 3년 반 동안 ‘내로남불’이 너무 많았다. 상대방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내 편에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니 제대로 된 규칙을 만들 수 없다. 다주택자를 부동산값 폭등의 주범으로 지목했는데, 알고 보니 고위 공직자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그런 상황이었던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해법은 소유권을 분명히 정리하는 일이다. 누가 권력을 휘두르는가를 알아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 새로 임명된 청와대 참모들과 새로 선출될 여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기 바란다. 욕을 먹더라도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