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광풍, 90년대 일본처럼 버블 붕괴될까

입력 2020-08-11 04:06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1990년대 일본 버블 붕괴가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유동성 공급이 ‘부동산 광풍’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 상황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 일본과 달리 현재 한국은 가파르게 금리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동산 거품이 오래갈 수 있다는 얘기다.

플라자 합의로 버블 시작, 5년 후 붕괴

일본 경제의 버블은 86년부터 발생해 91년에 터졌다. 버블을 촉발시킨 건 85년 주요국이 엔화 평가절상을 합의한 ‘플라자 합의’다.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저하로 경기 부진이 닥치자 일본은 금리 인하와 내수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시장에 자금이 과잉 공급됐고 가계와 기업은 낮은 금리로 대출받아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했다.

도쿄를 중심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84년부터 5년간 2.7배,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같은 기간 2.2배 올랐다. 버블 경제 전성기였던 90년에는 주택 가격이 직장인 연봉의 8배, 수도권 신규 아파트 가격은 직장인 연봉의 18배에 달했다.

일본 당국은 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 세금 인상, 부동산 감정가 현실화 등을 시행했다. 뒤늦게 기준금리도 빠르게 인상했다. 89년 2.50%였던 기준금리는 90년 6.00%까지 1년 새 배 이상 올라갔다.

그러자 부동산 가격은 90년 10월부터 하락세로 전환했다. 91년 본격적으로 버블이 꺼지자 전국적으로 아파트와 토지 가격은 절반 이하로 추락했고, 대도시 주변에는 개발을 멈춘 유령 도시가 속출했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진입했다.

韓 집값 치솟지만… 금리 인상 어려움

한국의 부동산 시장 상황도 30년 전 일본과 흡사하다. 경기 부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는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 결과 시중에 풀린 많은 돈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서울 입주 5년 이내 아파트 평균 가격은 14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과 같은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일본처럼 금리 인상을 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 유동성 공급에 따른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아예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금리를 급격하게 올려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다. 또 양국의 경제 상황 등에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

부동산 광풍 장기화 가능성

금리를 건드릴 수 없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잉 공급되는 자금을 부동산 외 다양한 투자처로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잉 유동성 시대를 연 일본은 기축통화국의 장점을 이용한 해외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엔화가 전 세계 각지의 부동산, 금융상품, 소비시장의 ‘큰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또한 비슷하다. 초저금리로 시중에 넘치는 돈이 부동산보다 주식 시장에 더 많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은 2015년 기준 1.00%인데, 한국(0.16%)이나 주요국 평균(0.38%)보다 훨씬 높다. 주택 보유에 대한 세 부담과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대출 억제 제도 등이 주식 투자를 선호하게 만들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부동산 가격이 아직 과거 일본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고 금리 인상을 할 때도 아니다”며 “유동성 공급이 당분간 계속될 텐데 이를 해결하려면 실물경제가 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