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기온 상승 폭이 1.5도를 넘으면 지구는 회복력을 잃는다. 그 시점이 그리 멀지 않다. 그래서일까. 3년간 폭염과 태풍에 이어 올해는 장맛비가 예사롭지 않게 내린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진 비로 곳곳이 물난리다. 산사태에 농작물 피해도 크다. 물의 힘이 얼마나 센지, 사람이 세워놓은 것을 순식간에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린다.
‘3년 가뭄은 견뎌도 한 달 홍수는 못 견딘다’는 말이 있다. 한 달도 더 된 장마가 계속될 거란 소식에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변화가 무색해진다. 여름 햇빛이 부족해 풍성한 가을을 누릴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가을도 “비와 눈이 내려서 땅을 적셔 싹이 돋아나 열매를 맺게 하고,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사 55:10)을 느낄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근원인 하나님의 때를 거스르며 욕심껏 사는 것을 멈추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만만치가 않다.
하늘 나는 새와 들의 꽃처럼 먹고 입을 것 걱정 없이 살기가 어렵다. 햇빛과 땅의 기운은 고사하고 바람결도 느끼지 못한 채 살다 보니 날마다 철없는 것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더 빨리’를 외치며 속도감을 즐기니 길가에 핀 꽃이나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숨 돌릴 틈 없이 살다 보면 삶의 목적과 방향을 놓치기 일쑤다. 먹고 입고 쓰는 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온 것인지 알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씨’(요일 3:9)를 발견해 싹 틔우기가 어렵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대다수가 자동차와 일회용품 사용에 거리낌이 없다 보니 지구 생태용량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이번 장마도 인간의 과다한 행동이 부추긴 기후위기로 촉발된 ‘환경 재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마음, 하나님의 씨를 싹틔워낼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정한 때를 알아 그에 맞게 사는 연습을 반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언 땅이 봄비에 푸른 움을 내듯, 하나님의 때를 따라 주는 것들에 의지해 살아가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이의 눈물과 한숨을 품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때에 집중해보자. 거룩한 하나님의 두 권의 책인 성경과 지구를 묵상함으로써 우리 안에 들어온 철없는 것을 분별해보자. 당장은 낯설고 불편하겠지만, 때를 따라 사는 연습을 반복한다면 점점 덜 수고하면서도 즐길 날이 올 것이다.
만물이 때를 따라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방법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이나 교회 부근에 있는 나무와 친해지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창가에 화분 하나를 두고 사계절에 말을 걸면 된다. 나무 한 그루, 꽃이나 풀 한 포기가 싹트고 자라며 시드는 과정 전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현존을 날마다 느낄 수 있다. 자기의 필요를 채우는 지혜와 모두의 풍성한 삶을 회복하는 능력도 얻을 수 있다.
창조의 때에 우리 속에 넣어진 하나님의 숨을 의식하며 하루 한 번 이상 일상을 돌이켜보면 어떨까. 우주 만물이 내 의식주 생활을 어떻게 지지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그분이 보시기 참 좋은 삶’으로 안내받을 수 있다.
“나는 어느 때를 살고 있는가. 나를 나 되게 해주는 생명은 지금 나를 어떻게 지지해주는가. 나는 그들을 위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기후 위기로 절기가 뒤죽박죽되긴 했지만, 오늘도 때를 알고 그에 맞춰 살기 위해 질문하며 삶을 연습하자.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