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회 도왔나… 국회 회의록에 수상한 질의

입력 2020-08-10 04:07
2015년 국회에 수억 원 규모의 도청 탐지장치 납품을 대리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만나 청탁한 혐의를 받는 허인회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이 7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정 도청탐지업체의 국가기관 납품 배경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탄력을 얻게 됐다. 장기간 정치권 인맥을 활용해 G사 제품의 국가기관 납품을 돕고 수수료를 받은 허인회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그간 도청탐지 장비의 예산 확보 필요성이 강조되는 장면이 많았고, 이에 “로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문이 제기되는 장면도 있었다. 이번 수사 결과 국회의 예산심사권이 사적 인맥을 통해 쓰인 사실이 확인된다면 국회의원들의 윤리 확립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는 ‘운동권 대부’로 불리는 허 이사장 측이 정치권 인맥이 닿은 의원들을 상대로 도청탐지업체 제품의 국가기관 활용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허 이사장의 신병을 확보하자 법조계는 국회에서 도청 대비 예산을 확보할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질의된 장면들을 주목하고 있다. 2016년 11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국회는 국가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라며 도청 대비 필요성이 제안됐다.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이동식 장비 설치를 역설한 의원도 있었다.

이틀 뒤 열린 운영위에서는 당시 박완주 예결소위 위원장이 2017년 예산안에 “상임위원장실과 의원회관에 도청방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35억원을 신규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 검토에 대해 이견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운영위를 이끌던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의원회관에 도청탐지시스템이 필요하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예 “어디에서 집요하게 로비하는 것 아니냐”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서 도청탐지시스템 도입 필요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 이번 사태와 관계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허 이사장 측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국가 정보보안 기본지침’에 따라 공공기관에 도청방지장치를 설치할 수 있으며 의원 측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 제공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허 이사장 측은 “만나서 얘기할 수는 있다. 아는 사람 한두 명 정도 만났을 것”이라고 의원을 만난 사실에 대해선 인정했다.

서울북부지법 박지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숙고 끝에 지난 7일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허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조계는 이번 검찰 수사가 국회의 예산심사권이 오용된 사례를 겨냥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검찰 수사가 그간 고질적이라는 평을 듣던 각종 로비 관행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