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베이루트항 폭발사고로 국민의 분노도 함께 폭발했다. 레바논 정부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제안하고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은 8일(현지시간) 5000여명의 시위대가 수도 베이루트 도심의 순교자광장 등에 모여 지난 4일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를 야기한 책임을 물어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폭발 피해자들을 위해 복수하고 정의를 세워야 한다” “헤즈볼라는 테러리스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사퇴 아니면 교수형’ ‘혁명의 수도 베이루트’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으며 외무부, 에너지부, 경제부, 환경부 등 정부 부처와 레바논 은행연합회 사무소를 급습하기도 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쏘면서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레바논 적십자 등은 충돌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시위대 및 경찰 172명이 부상을 입어 5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하산 디아브 총리는 시위가 과격해지자 이날 TV로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10일 의회 선거를 조기에 치르자고 정부에 제안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디아브 총리는 구조개혁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2개월간 한시적으로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마날 압델-사마드 레바논 공보부 장관은 9일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고위직 인사로는 처음으로 폭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디아브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지난 1월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아 출범했다. 현재 헤즈볼라와 그 동맹이 전체 128석 중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디아브 총리의 조기 총선 제안에 대해 “지난 4일의 폭발사고가 제기능을 상실한 레바논의 정치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신호”라고 풀이했다.
레바논 주재 미국대사관은 “레바논 국민은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고 국민 목소리를 들어 방향을 바꾸는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면서 레바논의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
레바논 보건부 등에 따르면 폭발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158명, 부상자는 6000여명, 실종자는 60여명으로 집계됐다. 유럽연합(EU) 회원국과 프랑스, 중국, 미국 등은 9일 화상 정상회담을 열고 레바논에 대한 긴급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