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른 병기(病期)에 더 쉽고 정확하게 암을 가려내기 위한 방안으로 ‘액체 생체검사(액체 생검)’가 최근 의료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암 진단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조직 검사(조직 생검)는 내시경이나 바늘 등 도구를 몸에 삽입하거나 찔러넣는 침습적 방식이다. 하지만 암 발생 위치나 크기, 환자 상태에 따라 조직 생검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한계가 있다.
액체 생검은 조직 생검의 이런 위험 부담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돼 왔다. 액체 생검은 신체 조직이 아닌 혈액, 소변 등 체액에 존재하는 암세포나 암세포에서 유래된 DNA를 분석해 암 발생 및 전이 여부 등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방법이다.
주로 피 속에 떠돌아다니는 혈액순환 종양세포(CTCs), 혈액순환 종양DNA(ctDNA), 엑소좀(exosome) 등이 분석에 활용된다. 엑소좀은 다양한 물질을 다른 세포에 전달하는 기능의 운반체로, 소변 혈액 침 가래 등 모든 체액에 존재하며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
암진단 바이오기업 지노믹트리 오태정 연구개발본부장은 10일 “질병 상태를 알 수 있는 바이오마커(생체 지표)로는 DNA, RNA, 단백질, 혈청 등이 연구되고 있는데 암 관련해서는 DNA 진단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정상세포가 암세포가 되려면 가장 먼저 DNA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NA단계의 변화를 포착하면 무증상 상태에서도 조기에 암을 찾아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여개, 국내에선 3~4개 진단기업이 액체 생검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암 조기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통해 상용화까지 성공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미국의 이그잭트사이언스가 액체 생검 기반의 대장암 진단 키트를 만들어 건강보험 적용까지 받고 있다.
국내에선 암 발병 초기에 나타나는 ‘DNA 메틸화’ 현상을 활용한 바이오마커 발굴과 검출 기술을 보유한 지노믹트리가 두각을 보인다. 이 기업은 대변 DNA에서 ‘신데칸-2’라는 바이오마커를 측정해 대장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제품을 상용화해 1000개 넘는 의료기관에 보급했다.
나아가 폐암과 방광암 조기 진단 제품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폐 결절(혹)이 있는 환자의 혈액에서 메틸화된 바이오마커(PCDHGA12)를 측정해 폐암 여부를 확인하는 제품을 이미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심사를 받고 있다. 경북대칠곡병원이 522명(정상인, 양성 폐결절, 양성 폐질환, 비소세포폐암, 소세포폐암, 다른 암 환자 포함)을 대상으로 2017~2019년 임상시험을 벌인 결과 폐암 진단의 민감도(암을 암으로 진단)는 77.8%, 특이도(암이 아닌 걸 아니라고 진단)는 92.3%로 확인됐다. 민감도 77.8%는 혈액을 통한 폐암 진단에선 높은 수준으로 통한다. 아울러 혈뇨를 보는 환자들의 오줌 속 암세포 DNA를 포착해 방광암 고위험군을 골라내는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액체 생검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혈액 속에 포함된 암세포나 그 DNA가 매우 적은 양인데다 가변적이고 검출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쓰이기 위해선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도 필요하다.
오 본부장은 “검출이나 분석법 뿐 아니라 보관 기술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며 “특히 혈액을 타고 다니는 종양 DNA는 처리가 잘 안되면 쉽게 부서져 시료로 부적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