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논의하는 자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이번 주 소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인 인상률 책정 작업에 들어간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건강보험기금 지출이 많아 안정적인 재원 유지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고 지원 또한 지금보다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 1분기 건강보험기금 당기수지 적자는 94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89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공단은 “코로나19 사태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현재 코로나19로 확진되면 진단검사비부터 입원치료비까지 전액 무료다. 건강보험에서 80%, 국가가 20%씩 부담해서다. 이날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만4598명이다. 지난달 23일까지 코로나19 검사 및 치료비에만 1143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던 대구, 경북 경산·청도·봉화 주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건보료 경감도 실시하면서 9115억원이 소요됐다.
건강보험기금은 코로나19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요양기관 지원에도 쓰인다. 정부는 지난 3월 전국 모든 의료기관에 요양급여비 선지급 특례 신청을 시작했다. 진료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급여비를 사전에 지급하고 실제 발생한 급여비와의 차액을 추후 정산토록 했다.
정부는 전년도 3~5월의 월 평균 급여비로 책정해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과 확진자 발생 병원에는 해당 금액의 100%, 그 외 의료기관에는 90%를 지급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6월 30일 기준 전국 요양기관 5514곳에 2조5333억원의 급여비가 선지급됐다.
올해 건강보험료는 전년보다 3.2% 인상됐다. 이로 인해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은 2019년 6.46%에서 2020년 6.67%로 높아졌다. 매달 400만원의 급여를 받는 직장가입자는 건보료가 작년보다 8400원 오른 셈이다. 다만 직장과 개인이 절반씩 부담하므로 실제 직장가입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4200원 늘었다.
3.2%는 ‘문재인케어’를 전면에 내세운 현 정부가 공언한 평균 인상률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63%에서 70%로 확대하는 문재인케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2018~2022년 5년간 건보료 평균 인상률을 3.2%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건보공단은 내년에도 건보료가 3.2% 오른다는 가정 하에 직장가입자의 월 평균 본인부담금이 3943원, 지역가입자는 3098원이 각각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건강보험의 혜택을 체감한 국민들은 최근 건보공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적정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건보공단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실시한 조사(95% 신뢰 수준에서 오차범위 ±2.2% 포인트)에서 응답자의 87.0%(매우 동의 39.3%, 대체로 동의 47.7%)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를 누릴 수 있다면 적정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현 단계에서 적정 수준의 인상이 없을 경우 2000년대 초에 겪은 건강보험 재정파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1년 의약분업 시행에 앞서 건강보험 수가 인상 및 약제비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역가입자 대표에 의해 보험료 인상이 저지됐고 결국 그해 2조1775억원의 당기 잉여금 적자가 났다. 기업어음 발행을 통해 30조원이 넘는 차입금을 도입하는 등 의료보험 제도 시행 이래 초유의 일이 벌어졌고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 제정됐으며 이듬해인 2002년 건보료를 무려 6.7% 올려야 했다.
건보료 인상에 반대하는 경영계와 노동계를 설득하려면 재정 당국의 건강보험 국고 지원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보료 인상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등장하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국민에게만 지우려 한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려면 재정 당국이 법에 규정한 비율의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은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20%에 해당하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은 정부 지원이 시작된 2007년부터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문재인케어로 더 많은 건강보험기금이 필요해졌지만 정부의 국고 지원 비율은 현 정부 들어 되레 떨어졌다.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2017~2019년 건강보험 국고 지원 비율은 평균 13.4%로 이명박정부(2008~2012년), 박근혜정부(2013~2016년)의 평균치인 16.42%, 15.35%보다 낮다.
올해 14%에 해당하는 9조원을 확보했던 보건복지부는 내년 지원액을 15%로 늘려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보다 1조7000억원 늘어난 액수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코로나19 2차 유행과 경제위기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려면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적정 수준의 건보료 부담과 국고 지원 비율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