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인간적 면모, 마음에 콕 박혀”

입력 2020-08-10 04:05
뮤지컬 ‘루드윅’에서 장년의 베토벤을 연기하는 가수 겸 배우 테이. ‘루드윅’은 베토벤의 일생을 소년, 청년, 장년으로 나눠 세 명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하는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과수원 뮤지컬컴퍼니 제공

“그럼에도 이 피아노가 좋았어.” 뮤지컬 ‘루드윅’에서 장년 루드윅을 연기하는 배우 테이(김호경)는 베토벤에 이입한 순간을 떠올리며 이 대사를 읊조렸다.

“그냥 저 같더라고요. 천재 음악가의 인간적인 면모가 마음에 콕 박히는 순간이었죠. 제게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음악이 좋았어요.”

테이는 최근 국민일보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서 만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루드윅’(루드비히의 영어식 발음) 무대에 오르는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해 공연 당시 연습 시간이 많지 않아 다시 하고 싶었는데 올해 기회가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테이는 2004년 가수로 데뷔해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2012년 ‘셜록 홈즈: 앤더슨가의 비밀’로 뮤지컬에 입문한 후 ‘여명의 눈동자’ ‘시티오브엔젤’ 등에 출연했다

다음 달 말까지 공연하는 ‘루드윅’은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한 작품이다. 베토벤의 일생을 소년, 청년, 장년으로 나누어 세 명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하는 3인 1역의 독특한 구성이다. 2018년 초연 당시 호평을 받아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과 맞물려 의미가 깊다.

천재 음악가로서의 업적에 비해 청력을 잃고 연인과 헤어지고 고독하게 산 베토벤의 삶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테이는 베토벤의 고달팠을 삶의 순간들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열정을 쏟아붓던 대상에 집착하기도 한다. 조카 카를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이번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군인을 꿈꾸는 카를과 자신의 뒤를 이을 음악가로 조카를 키우려는 루드윅의 갈등이다.

“저도 조카가 있고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베토벤에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죠. 베토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어요.”

당시 베토벤은 지금으로 치면 최정상급 연예인이다. 요즘 가수가 콘서트를 열 듯 베토벤은 대중 앞에서 연주했고 수시로 평가 받았다. 테이는 집착의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베토벤은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매 순간을 칭찬과 비난의 경계에 서 있었을 거예요. 그도 사람인데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사람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다 보니 곁에 있는 사람만 계속 바라보게 되는 거죠. 그 대상이 조카 카를이었어요.”

카를이 “바람을 쐬고 싶다”고 말하면 베토벤은 “그럼 바람 같은 음악을 만들어 보자”고 말하곤 했다. 베토벤에게 가장 소중한 건 음악이었다. 아픔을 이겨낼 수도, 시련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 테이는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베토벤의 훈육에 강압과 폭력성을 배제해야 했다. 그는 “카를에게도 음악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베토벤은 나름의 최선을 다해 조카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베토벤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테이는 베토벤을 연기하면서 집착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흐르듯 살고 싶어졌어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무작정 흘러가려는 게 아니에요. 노를 저어 삶의 방향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거죠.”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