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찬석 검사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던 어느 날 청와대의 호출을 받았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단 5분의 시간을 허락하는 국회의원들을 위해 3쪽짜리 검찰 입장을 가방에 넣고 다니던 때였다.
당시 대검의 기조는 검찰이 특별수사를 줄이고 사법 통제 기관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폐청산 수사의 쓸모를 아는 이들은 직접수사는 놔두고 오히려 일반 사건에서 검사의 지휘권을 손보고 있었다. 권력기관 개혁을 역설하는 조 전 수석의 말을 다 듣고, 문 검사장은 결론이 정해진 상황임을 직감했다. 그는 일어서는 청와대 사람들의 등 뒤에 마지막 말을 던졌다.
“검찰 후배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주십시오. 무엇이 개혁이라는 것입니까. 개혁이라는 게 인정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 인사는 “이때 모두가 ‘문 검사장은 어렵겠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검경 수사권 논의는 패스트트랙까지 그대로 흘러갔다. “직접수사를 줄인다”는 주장은 지난해 하반기 조 전 수석 일가에 대한 비리 수사가 시작된 이후 갑자기 대두되기 시작했다. 막말 듣기를 무릅쓰고 의원실 앞에서 시간을 보냈던 검찰 사람들은 그 장면에 웃지도 않았다.
이후에는 설득력이 있었을까. 살아있는 권력 비리를 겨냥한 검사들은 인사 보복을 당했다. 언론의 검찰 취재는 제한되고 공소장은 감춰졌다. 증거가 없어도 법무부가 유착을 말하더니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을 잃었다. 그때마다 부여된 의미는 개혁이었으나 다수는 무엇이 개혁이냐 되묻고 있다. 문 검사장은 지난 2월 전국 검사장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거론해 쓴소리를 쏟았다. 인사 불이익을 신경 쓰는 이라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자신도 옷을 벗었지만 “문 검사장님이 곧 사표를 던질 것 같다며, 더욱 큰 변호사 사무실을 구해 모시겠다”던 전직 검사들도 있다.
8일 그는 “관사에서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 소회를 청했으나 그는 나중에 글을 보라며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구하려 들지 않아도 많은 검사가 문 검사장의 글을 읽어보라며 보내줬다. “후배 검사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생각하면 참담하기만 하다.” 정부도 기자도, 지난 7일의 인사에 지금 말해지는 ‘검찰 개혁’이 다 담겼다고 생각한다. 많은 검사가 문 검사장처럼 “검찰 후배들을 설득할 명분을 달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