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오는 9일 대선을 앞두고 전례 없는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변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사진)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37세의 이 여성 정치 신인이 26년간 유지됐던 철권통치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티하놉스카야는 반체제 활동으로 유명한 유튜버 세르게이 티하놉스키의 아내다. 티하놉스키는 지난 5월 말 불법 집회를 주최해 사회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됐다. 대중적 인기가 있던 그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영어교사 출신으로 정치 경험은 전무한 티하놉스카야는 남편을 대신해 출마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5월 트랙터 공장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티하놉스카야의 도전을 폄훼했다. 그는 “우리 헌법은 여성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은) 불쌍한 것”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성차별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주부의 용기는 돌풍이 됐다. 지난달 30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티하놉스카야 지지 집회에는 6만3000명이 참가했다. 벨라루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수만 명의 지지자가 주말마다 모여 “티하놉스카야 당선”을 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티하놉스카야 돌풍의 원인으로 벨라루스의 고질적인 경기침체와 루카셴코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실패 등을 꼽았다.
티하놉스카야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고, 독재를 막는 대통령 임기 제한 헌법소원 투표를 실시한 뒤 6개월 안에 대통령직을 사임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나에게는 권력이 필요하지 않고, 나는 권력을 원치 않는다”며 “나는 그저 내 아이들, 남편과 우리 가족 안에서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 주관 여론조사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이 78%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티하놉스카야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대선은 여성 리더와 코로나19에 대한 루카셴코의 비현실적 인식과 그의 독재 권력에 금이 가는 계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