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온상 취급하더니… 정부, 이젠 ‘갭 투자자’에 기댄다

입력 2020-08-07 04:04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계약갱신청구권) 통과 이후 전월세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상당수의 임대인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아이러니하게 그동안 투기의 온상으로 취급해온 ‘갭 투자자’들에게 기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갭 투자란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고른 후에 전세 세입자가 들어가 있거나 들어갈 예정인 주택을 매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을 지급하고 세입자의 전세금을 이전 매도인으로부터 승계하는 형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5일 한 방송에 출연해 “서울 등 수도권 대부분의 임대 가구가 갭 투자 목적으로 산 집”이라며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려면 전세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데 그럴 만큼 금전적 여유가 있지 않은 상태라 쉽게 전환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 전월세의 급격한 전환이 부담되자 오히려 갭 투자자를 앞세워 여론의 화살을 피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앞서 여당에서 나온 “월세 전환도 나쁘지 않다(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는 발언과도 온도 차가 크다. 정부가 급기야 갭 투자자까지 내세우며 전월세 전환 우려를 차단하는 것은 실제 갭 투자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의 전세금 승계 거래 비율은 전체 매매 가운데 52.4%였다.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이른바 ‘강남 4구’에서는 이 비율이 72.7%에 달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갭 투자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6일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전세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전세 보증금에 기댄 갭 투자 역시 힘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도 강화됐다. 갭 투자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전세자금 대출은 6·17 대책에 따라 규제 지역 내 3억원 초과 주택을 사는 즉시 회수된다.

전월세의 급격한 전환을 막기 위해 정부·여당은 현재 4%인 전월세전환율을 2%대로 낮추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임대인의 세 부담은 늘리면서 임대인의 소득은 제한하는 조치가 계속되면 임대시장의 공급이 줄어들어 결국 새로 임대 시장에 들어오는 임차인의 부담이 높아지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