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날 밤의 회심은 온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맥 빠진 회심이자 내키지 않는 회심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이런 조건의 회심자까지 받아준다.”
소설 ‘나니아 연대기’ 저자인 CS 루이스(1898~1963)가 자신의 회심을 묘사한 내용이다. 루이스는 모태신앙에서 무신론자로, 다시 기독교인으로 돌아오는 독특한 신앙 이력의 소유자다.
최근 김진혁(45)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가 펴낸 ‘순전한 그리스도인’(IVP)에는 이러한 루이스의 영적 순례기가 담겼다. 책은 상상력과 이성, 신앙의 조화로 회심을 경험한 루이스의 세계로 독자를 친절히 안내한다. 김 교수를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목회학석사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조직신학자다. 그간 ‘신학공부’ ‘질문하는 신학’ 등 주로 신학과 관련된 책을 펴냈다. 그런 그가 영문학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루이스를 주제로 책을 쓴 건 영국 유학 중 루이스와의 인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 헤딩턴에 있는 루이스의 생가는 현재 CS루이스연구소로 사용된다. 미국 CS루이스재단이 관리하고, 재단이 선발한 인문학자들이 상주하며 연구 활동을 한다. 런던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던 김 교수는 이 과정에 선발돼 1년 가까이 루이스 생가에서 지냈다. 덕분에 그는 월터 후퍼나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 루이스 전문가를 통해 직접 루이스의 삶과 글을 접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누렸다. 루이스 생가에서 열리는 연극이나 공연 관람, 전 세계 루이스 팬과의 교류는 덤이다. 소설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 차림을 하고 온 미국 팬도 있었다. 그는 “‘반지의 제왕’ 저자이자 루이스의 친구인 JRR 톨킨의 생가가 보존이 안 돼 그런 차림으로 온 게 아닌가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 교수는 책에서 무신론자이던 10~20대 시절 루이스의 반기독교적 신념을 재구성하는 데 특히 힘을 기울였다. 루이스는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경험과 합리주의 교육관의 영향으로 수십 년간 무신론자로 살다가 지적·영적으로 회심한다. 지적 회심은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돌아선 것이고, 영적 회심은 예수의 부활과 삼위일체를 사실로 믿게 된 사건을 말한다. 훗날 ‘잉클링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영문학 애호가의 모임 영향이 컸다. 이 모임에서 활약한 톨킨은 신은 믿되 성경을 믿지 못했던 루이스에게 ‘복음서를 신화처럼 상상력을 갖고 읽어볼 것’을 권했고, 루이스는 이 방식으로 기독교에 마음을 연다. 상상력과 이성으로 신앙이 잉태된 순간이다. 루이스 글 특유의 은유,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독교 변증법도 이 배경에서 나왔다.
루이스의 회심은 긴 기간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회심 이후 신앙 여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믿음은 아무리 기분이 바꿔도 한번 받아들인 것은 끝까지 고수하는 기술”이라며 신앙을 지킨다. 김 교수는 이런 루이스의 태도가 “상상력과 이성, 신앙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며 “우리 역시 그의 통찰을 본받아 흔들릴망정 자신만의 순례 여정을 걷자”고 제안한다. 그는 “상상력과 이성을 품은 신앙인이 되면 지나친 신앙주의나 합리주의에 함몰된 외골수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전인적인 사람됨을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다”며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고유의 삶을 살며 나와 다른 경로를 걷는 기독교인도 쾌히 인정하는 것, 이것이 순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
김 교수의 차기작 주제는 다시 ‘신학’이다. 종교가 정치화되는 현실 가운데, 정치신학의 기본 개념을 소개하는 책을 구상 중이다. 루이스처럼 비유에 능하며 명료한 글을 쓰는 그이기에 차기작도 기대가 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