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강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지원을 받아 핵 시설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서방권 관료들을 인용해 “사우디는 중국과 함께 북서부 인구밀도가 낮은 알울라사막 지역에 비공개 핵 시설을 건설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에 자연적으로 매장돼 있는 우라늄 광석을 화학적으로 가공해 우라늄염을 추출하는 시설로 두 곳의 중국 법인이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한 곳으로 국가경제에서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는 현재 포스트 석유 시대를 대비해 원자력 기술 획득에 주력하고 있다. 사우디 국방부는 이번 핵 시설 건립과 관련해 “경제 다각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라늄염이 단순히 원자력발전의 원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농축 과정을 거치면 언제든지 핵무기로 개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사우디가 이미 초기 단계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진전 중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의 핵 시설이 벌써 가동을 시작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고 WSJ는 전했다. 하지만 사우디가 실제로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대 관계에 있는 이란, 이스라엘 등도 대놓고 핵무기 경쟁에 뛰어들면서 중동 정세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제임스마틴 핵비확산연구센터(CNS)의 이언 스튜어트는 “사우디의 우라늄염 설비는 이란이 보유한 핵에 대한 장기적 위험 대비”라며 “토착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겠다는 행보”라고 WSJ에 말했다.
사우디가 핵심 동맹국인 미국이 아닌 중국을 원자력 개발 파트너로 삼았다는 점도 핵무기 개발설에 힘을 싣고 있다. 사우디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을 경우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제한되고, 원자력 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허용하는 내용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정서에 추가 서명해야 한다. 사실상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과 협력할 경우 핵이나 원전을 개발해도 이를 공개할 의무나 추가적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